남자 군복 입고 싸웠는데... "6.25때 여성의용군도 있었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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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숨은 영웅 여성의용군

 

내가 6.25 전쟁 당시 활약했던 여성의용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오는 6.25전쟁기념일을 앞두고 관련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나는, 자료를 찾던 중 불현듯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이 궁금해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열사와 같은 호국영웅이 반드시 한 명쯤은 있으리라 하는 설렘을 안은 채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여군이자 6.25전쟁의 숨은 영웅, 대한민국 여성의용군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여성의용군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약 두 달여 뒤인 1950년 9월 6일 창설됐다(현재 매해 9월 6일은 대한민국 여군창설일로 기념되고 있다). 당초 여군 500명을 모집하겠다는 소식에 무려 2,000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당시 여성들의 자발성과 멋진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에 뜨거운 게 복받쳐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임진왜란 때 여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일본군과 싸웠듯, 여자라고 국가의 위기 앞에서 손만 놓고 있을 수 없었다." - 여성의용군 교육대 이인숙 참전용사 인터뷰 中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어요. 대단한 사람들... 입으로만 말하는 애국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말 그 자체 그대로입니다." - 이점례 여성의용군 인터뷰 中 "


강한 투지와 숭고한 애국 정신 하나로 뭉친 이들은 당시 갖은 차별과 역경에도 맞서 싸워야만 했다. 전투 복장이라고는 펑퍼짐한 남자 군복 또는 미군 군복을 입어야만 했고, 남자군인들이 쓰고 남은 군화를 사용했다. 심지어는 잠을 잘 숙소 역시 제대로 구비되지 못해 '피난지 민가'를 이용하기 일쑤였다. 여성의 권리 자체도 지금에 비하면 턱없이 낮았고, 여군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경했던 당시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들 중 일부가 자국민들로부터 '인민군 포로'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이들은 각종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강한 자부심으로 이를 악물었고, 다양한 상황에 배치되며 1953년 휴전 선언 전까지 갖은 전시 상황에 투입돼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예로 1.4 후퇴 당시 신분 위장 중에 있다가 유격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비롯한 주요 거점에서 대적/대민 선무 활동을 했으며, 북한군 약 1200명을 귀순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여군들은 모성애를 호국혼으로 바꿨다" - 여성의용군 이수덕 참전용사

 

이들의 활약상을 자료로 접하고, 직접 여군들의 인터뷰한 나는 자랑스러운 한편, 이내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지금껏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여성의용군이라는 존재는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떠오르는 여성 호국영웅이라고는 아까 언급했던 유관순 열사 정도뿐이었고, 심지어 여태껏 나는 6.25전쟁 참전용사들 중에는 남자 군인들밖에 없던 줄로만 알았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역시 반응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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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용군을 알리기로 결심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나는 이들을 알려보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결심했다. 오는 6.25전쟁일을 겨우 며칠 앞둔 만큼, 이들의 존재와 활약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들에 대한 관련 정보가 이렇게도 턱없이 부족한 줄 몰랐다. 제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블로그 게시물 몇 개와, 당시 활약했던 의용군 할머님분들의 인터뷰 기사 몇 개가 전부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6.25전쟁 그 자체와 관련된 자료만 많았지 그 중에서 '여성의용군'을 다루고 있는 자료의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자료 수집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동아리원들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관련 기관에 전화를 걸어 여성의용군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던 중, 어떠한 한 기관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답변을 듣고야 말았다.


"여성의용군이요? 그런 것도 있어요?"


놀랍게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아니, 명색이 6.25 관련 기관이라는 곳이 여성의용군에 대해 안 지 불과 며칠 밖에 안 된 우리보다도 아는 것이 없다니.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바로 이 짧은 전화 한 통화는, 우리 동아리원들이 이번 '여성의용군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더욱 강한 동기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동아리 내부 회의를 거친 끝에 우리가 고안해 낸 알리기 방식은, 바로 교육이었다. 단순히 지면 광고를 띄우거나 거리 캠페인을 나가는 방식보다는, 조금 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장기적 효력을 지닌 캠페인을 하길 원했다. 실질적인 아이들 대상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믿음직한 후원처를 찾기 위해 우리는 역사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전문기관에 연락을 돌렸고, 오랜 두드림 끝에 사단법인 '우리역사바로알기 시민연대'라는 곳과 접촉하게 되었다.

 

위 기관과 약속한 내용은 우리 동아리 측에서 먼저 여성의용군을 알리는 차원에의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하여, 이에 따른 수익금의 일부를 후원금으로서 교육 자료 제작 및 교육 캠페인 진행 등에 사용하는 식의 내용이다(순수익의 30%는 교육후원금, 10%는 교육 캠페인 진행비용, 나머지 60%는 향후 별도로 있을 추가 교육 캠페인 비용과 다음 프로젝트 진행 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프로젝트는 이미 모든 준비와 기획 단계를 넘어서서, 현재 우리 'U-Tur'팀에서 여름을 맞아 제작한 티셔츠와 보틀을 게시하여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받고 있다. 현재 '텀블벅'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펀딩을 진행하고 있으며, 게시 3일 만에 목표금액의 500%를 달성했다. 프로젝트 종료일은 7월 4일이며, 프로젝트 종료 전까지 6.25전쟁일 이후로, 여성의용군을 알리기 위한 꾸준한 오프라인 홍보를 계속할 예정이다(자세한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사이트 내 게시될 예정이다).


여성의용군이 기억되는 시작이 되길 바라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홍보하면서 일부 부정적인 여론에 맞닥뜨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점이다. 다 같은 참전용사인데 웬 여성참전용사들에게만 대단하다고 유난을 떨어대냐는 둥, 심지어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만으로 여성 우월주의자가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가 이번 프로젝트에 강하고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진행하게 된 이유는, 바로 남녀 불문 우리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쳐 싸우신 우리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강한 애국 정신을 조명하고 싶은데, 특히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고 그 업적이 절하된 이들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부디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대한민국 6.25 참전 여성의용군을 알고 기리는 그 첫 번째 '기억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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