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잘릴 거 같아서' 성추행 당하고도 일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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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09:59
"나는 가전제품 방문관리사입니다. 특수고용 노동자이고 중년의 여성입니다.
여느 때처럼 그날도 일을 하러 어느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냐?'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오면 안 무섭냐?'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계속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잠시... 남성은 저를 성추행했습니다.
온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놀랐고 한편,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제품 관리를 모두 마치고서야 그 집을 나왔습니다. "
-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 사례 중>
"그 와중에도 나는 일터를 벗어날 수 없었다" 왜일까?
"정규직도 아닌데 근무지 이탈했다가 잘릴 거 같아서"
"사유를 말해도 회사로부터 보호 보다 문책 당할 거 같아서"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조직 내에 취약한 위치의 노동자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이 없는 노동자가 사건 발생 당시 즉각적으로 일터를 떠나 대피하거나, 사건 고지 후 처리 과정 중에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유급 휴가 명령을 얻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아무도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자신을 성희롱 피해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작업을 중지할 권리'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급박한 위험에서 대피하고, 그로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이다.
독일은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작업거부권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직장 안에서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당한 경우, 사용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조치를 취할 경우 노동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업무를 정지할 수 있는 작업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성희롱피해자의 보호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독일의 작업거부권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박귀천, 2011)>
한국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이 있다. 하지만 주로 물리적 사고나 화학물질, 소음, 공해 등을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해야 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노동자의 반인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로 보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직장내 성폭력은 노동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유해 요인이 분명하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분노, 수치심, 두려움, 우울증, 무력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호소했고, 수면장애, 두통, 체중감소 및 폭식 등과 같은 신체 반응 뿐 아니라, 행동 및 인지 반응에 있어서도 근로의욕 저하, 자신감 저하, 대인기피,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나 직장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 <직장내 성희롱이 피해자 심리정서에 미치는 영향 및 불이익 조치 실태(서울여성노동자회, 2017)>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의 개념이 여성의 노동 경험에 기반해 확장되고 재구성 돼야 한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