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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자격지심 아니야?" 남편의 형은 말했습니다

"그건 자격지심 아니야?" 남편의 형은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 0 5,197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는 결혼 이후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온 청오리(활동명)의 경험을 풀어낸 에세이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두번째입니다. - 기자 말

"됐다. 걔도 삐딱선 탔네."

남편의 형은 내 메시지를 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네가 진정한 사과의 방법을 알게 되면 그때 찾아와라. 너네들이 아랫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뼛속까지 심어주려는 거면 포기해라.

그리고 자신의 처가 이야기를 꺼냈다. 처가네 '올케'도 처음에는 '형님'인 자신의 아내에게 연락하기 어려워했는데, 시집온 지 3년쯤 되니까 오히려 먼저 전화도 하고 시어머니도 자주 만난다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되지 못하는 건데? 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되냐고…."

한바탕 말잔치가 끝난 다음, 시어머니는 내가 나서서 사과하기를 부탁했다. 시어머니는 남편 형의 아내가 이 싸움 때문에 울부짖고 있다고 전하며, 이러다 정말 애 엄마를 잡겠다고 걱정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 사랑한다. 도량이 넓은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렴."

그때까지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시아버지도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새아가'라는 호칭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이번 일로 마음 고생이 심하겠구나. 먼저 전통적인 호칭이 남녀 차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 시가 처가에서 부르는 호칭은 서로 친인척 관계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도 되니, 가족 간의 소속감과 친밀감을 확인하는 이름으로 보자. 오해를 불러일으킴도 문제 발생의 원인이니 새아기의 사과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예: 형님! 죄송해요. 많이 속상하셨죠? (…) 이런 관계를 미리 알고 정리해주지 못한 시부모가 잘못이니 용서해다오."

남편은 형이 했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리니까 어린애처럼 떼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남편은 내가 지나치게 분노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나는 결국 남편 형의 아내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내가 처음 호칭 얘기를 꺼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과 형의 연락으로 매일 불나게 울려대던 남편의 전화기는 잠잠해졌다. 남편은 호칭 얘기를 꺼낸 이후 처음으로 편안하게 잤다며 개운한 얼굴을 보였다. 시부모님 역시 이제 좀 조용히 살겠다며 안도하는 눈치였다.

시어머니의 말.

"걔가 정말 너를 낮은 위치로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그저 자기 일상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었던 거지. 큰애 성격이 그래. 너도 이번 일로 상심이 컸겠지만, 이제 훌훌 털어버리자."

시아버지의 말.

"원래 키 큰 사람은 키 작은 사람 심정을 이해 못 해. 그런데 계속 알아달라고 이야기해봤자 힘만 들지."

남편은 아무 일 없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며 맞장구쳤다. 가정의 평화란 이런 것일까? 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안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이제 모든 일이 다 끝났고, 남은 과정은 내가 '훌훌 털어버리는 것'밖에 없다고 믿는 것 같았다.

나는 판촉물 사이트에서 컵을 100개 주문했다. 컵 겉면에는 남편 형의 말을 넣었다.
 
'일상에서 시시콜콜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야?'
'그건 너의 자격지심 아니야?'

그리고 아래쪽에 'Men Talk'라는 글자를 더했다. 주문은 빠르게 처리됐고, 금세 한 무더기의 컵이 집에 도착했다.

한번 이 컵을 들고 나가서 100명의 사람을 만나 보자. 내가 겪은 일을 가족이라는 담장 밖으로 꺼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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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담장 밖에서 듣고 싶었다

나는 듣고 싶었다. 나만 이렇게 호칭을 부를 때 입에 걸레를 무는 것 같은지, 호칭을 애써 피할 때 누가 내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느끼는 건지. 친가는 아버지 쪽 집안이고, 외가는 어머니 쪽 집안이라는 국어사전을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아기에게 아버지의 성을 붙이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나는 내 사연이 적힌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서 컵 상자에 넣었다. 이 컵이 편지를 담은 유리병처럼 흘러가서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랐다. 이 사회 어딘가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컵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은 돌에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깨지긴 해도 잘 썩지 않는 물건이니까, 오랜 시간 후에 누군가 이 컵을 발견하고 한국에서 한 여성이 겪은 일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한국여성민우회의 독서 모임 회원들이었다. 사실 나는 시가에 처음 호칭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답답한 마음을 이 독서 모임의 단체대화방에 털어놓곤 했다. 모임 친구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분노가 정당하다는 생각을 지킬 수 없었을지 모른다.

호칭 사건의 진행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자주 자신을 의심했다. 가족의 호칭을 바꾸자는 건 터무니없는 요구인가? 나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인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인가? '더 좋게' 말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컵을 받은 독서 모임 친구들은 싸움의 방식이 재미있다며 환호했다. 나는 그 말에 힘입어 다음 장소로 나아갈 수 있었다.

친구, 지인, 여성단체 회원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내 싸움에 동참하길 요구했다.

컵을 받은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는 여성도 있었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며 폭소를 터뜨리는 남성도 있었다. 한 여성은 내 편지를 찬찬히 읽고, 자기 주위에도 이 컵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한 여성은 내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된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좋은 소리만 듣는 건 아니었다. 한 남성은 휴대 전화로 사전을 검색해서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제수씨'도 대접하는 말이라 하고, '아주버님'도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데 뭐가 차별이냐. 처형과 처남, 아주버님과 도련님 차이라고? 뭐 그렇게 피곤하게 따지냐.

또 다른 남성은 남편에게 넌지시 조언했다. 사람 사이에 호칭은 민감한 문제인데 '제수씨'가 큰 실수 한 거다. 그것도 문자로 얘기했다고? 세상에.

다른 남성도 거들었다. 가족 사이에서 무슨 님이라고 부르는 건 친밀하지가 않지. 너무 정이 없는 호칭이지.

남편은 여러 가지 반응과 맞닥뜨리면서 이전과는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고 고백했다.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자신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는 말했다.

"그게 바로 내가 사는 세상이야."

한번은 사회에서 연일 터지는 성폭력 사건 보도를 보며 흥분하던 여성에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가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없다고? 그건 너무 나간 얘기다.

또 다른 여성도 자신의 '올케'나 '동서'가 서로 ○○님이라고 부르자고 한다면, 도저히 못 받아들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회에서 만났으면 몰라도…."

한 여성은 호칭이 문제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솔직히 자신의 남동생과 결혼할 사람이 나와 같은 요구를 하면 당황스러울 것 같다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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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족'이 되는 순간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평등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새삼 놀라웠다. 왜 사회에서 만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호칭이, 가족 간에는 무례하게 느껴지는 걸까? 왜 우리는 '가족'이 되는 순간,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닌 평등한 관계로는 만나지 못하는 걸까?

포털 사이트의 '가족 호칭' 사전에 따르면, 나는 시가 식구들을 아주버님이나 형님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들은 나를 제수씨나 동서로 불러야 했다. 또한 남편은 내 남동생의 아내를 '처남댁'이라고 부르고, 그 사람은 내 남편을 '아주버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한국 사회의 가계도를 뜯어보면, 두 가지 기준을 알 수 있었다. 누가 가부장인가, 누가 가부장과 가까운가. 사람들은 이 기준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계단에 섰다. 기혼 여성들은 시가에서 남편의 서열에 따라 자리를 찾아야 했다. 내가 호칭이 차별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남편의 형이 '일도 안 시켰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버럭댔던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자신의 계단에 서 있었을 뿐이라는 억울함.

이 계단에서는 누구도 평등한 개인으로 만날 수 없었다. 모두가 행복한 호칭을 찾아보자는 제안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도발이자 도전으로 여겨졌다.

나는 사전의 출처로 표기된 국립국어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질의응답 방인 '온라인 가나다'에서, 오래전부터 불평등한 가족 호칭 때문에 괴로워했던 여성들의 흔적과 만났다. 올해, 작년, 재작년, 오 년 전, 십 년 전에도 여성들은 호칭을 바꾸어 달라고 국립국어원을 두드렸다. 거기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호칭은 언중들의 약속'이라고 슬쩍 회피하거나, <표준 언어 예절>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으니 따르기를 권고한다고 답변할 뿐이었다.

호칭을 못 바꾸겠다는 사람들은 사전을 앞세우고, 사전을 만드는 기관은 언중을 내세우다니, 부조리극이 따로 없었다. 나는 게시판에 여러 번 글을 남기다가 사라진 여성들의 이름을 보면서, 국립국어원이 말하는 '언중'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말하는 무리'는 누구이며, 목소리가 지워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왜 어떤 사람들의 말은 '못 들은 척'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취급될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외삼촌, 외숙모. 처형, 처남, 처제.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형님, 동서, 올케.
 
이 계단을 부수려면 국어사전을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광장으로 나갔다.

* 24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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