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사라진다고, 성폭력 처벌받는다고 끝 아냐
오마이뉴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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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08:39
여성 문제에 있어 지금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이 인지하는 여성인권의 온도 차는 너무나 극명하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타날까. 이를 왕따의 사례로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왕따는 그 누구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교한 상황에서도 내일 등교를 걱정하고 타인이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모두 계산하며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왕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학생들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왕따 학생에게 친구가 되어주지도 않고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왕따를 무시하는 행위를 모방한다. 이로써 소극적 가해자도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극적 가해자는 자신이 점심을 먹으러 간 시간 동안 학교에 있지 않은 시간동안 왕따에게 가해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왕따의 정신적 피해와 두려움은 실재한다. 피해는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가해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이게 여성차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당사자가 아닌 남성들은 더더욱 이 소극적 차별에 자신이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그렇기에 여성과 남성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한 명의 왕따가 사라졌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해결된 것인가? 피해자들은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해결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에 방관했던 소극적 가해자들이 이를 반성하고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이런 현상을 거부할 수 있어야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구조를 막는 것 아니겠는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해보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고와 기나긴 재판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들은 모두 회복된 것인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에 집중하는 사회로
필자의 집에서 제사가 사라지고, 마지막 제사에서 여성과 남성이 절을 같이하고 밥을 같이 먹었다는 것으로는 필자가 외할아버지와 화해한 것은 아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2017년 해바라기 센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의 59.3%는 지인 관계에서 발생했고, 장관계·학교 선후배·선생님 등 사회적 관계에 얽힌 지인에 의한 피해가 5484건(47%)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자.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적 관계망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 이들이 성폭력을 신고하면 이 사회 집단 안에 있기 어렵다. 따라서 직장이든 학교든, 자신이 속했던 곳을 떠나서 세상에서 가하는 꽃뱀의 시선을 받아가며 적어도 3년~4년이 이어지는 법정 싸움을 해간다.
그 입증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입증해야 하며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정신적 상태를 악화시킨다. 증거와 피해에 매몰되어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치료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진단서를 증거로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피폐한 싸움을 한 결과 가해자가 감옥에 갔다. 구치소에서 3년 감옥에서 1년 있는 가해자는 그 1년 동안 사회에 복귀하여 재활할 수 있는 수많은 직업 훈련과 교정 프로그램을 받으며 무료로 숙식 제공받는다. 그러나 직장을 잃고 3년간의 경력단절이 일어났고, 일반 병원에서 한 회차당 7~9만원이 드는 심리 상담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갈까? 그들에게 어떠한 제도적인 도움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범죄자의 수사와 재판, 수용, 교화 등에 지출되는 국가 전체 예산은 대략 연평균 3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5년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평균액은 69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에 할당되는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무려 44배(2014년은 50배)에 달하는 현실이다.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상담국장에 따르면 올해 법무부가 조성한 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 1000억원을 순수하게 피해자(2015년 발생 범죄 200만건 이상. 통상 범죄 1건에 피해자 4명으로 보는 수치상으로 계산) 모두에게 나눴을 경우, 1명당 지원 가능한 금액은 몇백원에서 몇천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바 있다.
반면 "재소자 약 5만7000명의 교정을 담당하는 전국의 교도소는 식사와 교육비 등으로 재소자 1명당 매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을 사용"하고 "특히 강력 범죄자의 경우 독방과 CCTV 등 사용으로 1년에 5000만원에서 6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쓰인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 범죄피해자 지원 예산 턱없이 부족…지난해 범죄자 수사·수용 예산의 50분의 1 ,상담전문가 안민숙 "범죄피해자 고통은 사건 그날부터 지속" )
이렇게 얼마 안 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역시 피해자들의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폭력 피해자들 바로 옆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법체계는 형사 조사 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 보호에 치중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법재판에 들어서고 나면 피해자를 위한 정부의 도움이 거의 없다며 일상의 복귀는 피해자들의 몫이라며 비판했다.
이윤택의 1심 결심으로 6년 구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용기 있는 선택 끝에 이들의 연극 활동은 어떻게 지원되고 있으며 삶은 회복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가해자의 형량, 처벌에만 집중해온 사회적 패러다임을 끝내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들의 이후를 사회적으로 보살펴야 한다.
회사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일어나 자신의 생계를 떠나보냈다면 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경력단절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정신적 피해의 회복과 상담은 상담 회차가 정해져 있고 전문 상담사의 인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 역시 더 확대되어야 한다.
구조적인 예방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 회복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하지만, 문제해결의 유일한 만능열쇠는 아니기에 긴 글이지만 짧게라도 구조적인 인식 개선과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역시 중요함을 언급해야겠다.
학교폭력의 구조적 예방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감정을 고양하는 교육, 소극적 폭력에 많은 사람들이 예민해지고, 방조를 멈추게 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여성문제 역시 사회를 향한 과거 반성과 다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평등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그 구조를 재편하는 것으로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성폭력은 암수범죄(해당 범죄가 실제로 발생하였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이다. 아직도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하길 꺼리고, 본인의 피해 정도를 미리 재단하여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지인은 가정폭력을 겪고 여성단체에 상담을 하러 갔다가 여성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 해당하지 않으면 상담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는 것을 듣고는 자신이 그만큼 심각한 범죄의 피해를 입었나 고민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인은 꽤 상태가 심각해 센터에서 신고를 권유할 정도였지만, 지인은 신고를 결국 하지 않았다. 신고를 고민하는 여성들은 그 긴 과정과 열악한 조사 환경과 주변인들의 2차 가해를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박미랑 교수는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에서 부부폭력을 신고했을 때 체포, 중재, 격리의 조처를 취하고 6개월이 지난 후에 피해 조사와 폭력 신고조사를 통하여 가정폭력의 재범률을 측정한 결과 체포된 가해자는 10%의 재범률을 보인 반면 중재나 단순격리조치를 받은 경우는 20~-50%의 재범률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추후에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을 예방하는 데 유효한 대처임을 보여준다.
잘못된 과거를 단순히 덮어두고 없애버리며 더 이상 이 현상이 없다고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또다시 새로운 차별의 현상들을 자리잡게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는 과거와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논의하고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왕따는 그 누구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교한 상황에서도 내일 등교를 걱정하고 타인이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모두 계산하며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왕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학생들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왕따 학생에게 친구가 되어주지도 않고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왕따를 무시하는 행위를 모방한다. 이로써 소극적 가해자도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극적 가해자는 자신이 점심을 먹으러 간 시간 동안 학교에 있지 않은 시간동안 왕따에게 가해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왕따의 정신적 피해와 두려움은 실재한다. 피해는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가해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이게 여성차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당사자가 아닌 남성들은 더더욱 이 소극적 차별에 자신이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그렇기에 여성과 남성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한 명의 왕따가 사라졌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해결된 것인가? 피해자들은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해결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에 방관했던 소극적 가해자들이 이를 반성하고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이런 현상을 거부할 수 있어야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구조를 막는 것 아니겠는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해보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고와 기나긴 재판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들은 모두 회복된 것인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에 집중하는 사회로
필자의 집에서 제사가 사라지고, 마지막 제사에서 여성과 남성이 절을 같이하고 밥을 같이 먹었다는 것으로는 필자가 외할아버지와 화해한 것은 아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2017년 해바라기 센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의 59.3%는 지인 관계에서 발생했고, 장관계·학교 선후배·선생님 등 사회적 관계에 얽힌 지인에 의한 피해가 5484건(47%)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자.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적 관계망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 이들이 성폭력을 신고하면 이 사회 집단 안에 있기 어렵다. 따라서 직장이든 학교든, 자신이 속했던 곳을 떠나서 세상에서 가하는 꽃뱀의 시선을 받아가며 적어도 3년~4년이 이어지는 법정 싸움을 해간다.
그 입증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입증해야 하며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정신적 상태를 악화시킨다. 증거와 피해에 매몰되어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치료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진단서를 증거로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피폐한 싸움을 한 결과 가해자가 감옥에 갔다. 구치소에서 3년 감옥에서 1년 있는 가해자는 그 1년 동안 사회에 복귀하여 재활할 수 있는 수많은 직업 훈련과 교정 프로그램을 받으며 무료로 숙식 제공받는다. 그러나 직장을 잃고 3년간의 경력단절이 일어났고, 일반 병원에서 한 회차당 7~9만원이 드는 심리 상담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갈까? 그들에게 어떠한 제도적인 도움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범죄자의 수사와 재판, 수용, 교화 등에 지출되는 국가 전체 예산은 대략 연평균 3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5년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평균액은 69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에 할당되는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무려 44배(2014년은 50배)에 달하는 현실이다.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상담국장에 따르면 올해 법무부가 조성한 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 1000억원을 순수하게 피해자(2015년 발생 범죄 200만건 이상. 통상 범죄 1건에 피해자 4명으로 보는 수치상으로 계산) 모두에게 나눴을 경우, 1명당 지원 가능한 금액은 몇백원에서 몇천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바 있다.
반면 "재소자 약 5만7000명의 교정을 담당하는 전국의 교도소는 식사와 교육비 등으로 재소자 1명당 매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을 사용"하고 "특히 강력 범죄자의 경우 독방과 CCTV 등 사용으로 1년에 5000만원에서 6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쓰인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 범죄피해자 지원 예산 턱없이 부족…지난해 범죄자 수사·수용 예산의 50분의 1 ,상담전문가 안민숙 "범죄피해자 고통은 사건 그날부터 지속" )
이렇게 얼마 안 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역시 피해자들의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폭력 피해자들 바로 옆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법체계는 형사 조사 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 보호에 치중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법재판에 들어서고 나면 피해자를 위한 정부의 도움이 거의 없다며 일상의 복귀는 피해자들의 몫이라며 비판했다.
이윤택의 1심 결심으로 6년 구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용기 있는 선택 끝에 이들의 연극 활동은 어떻게 지원되고 있으며 삶은 회복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가해자의 형량, 처벌에만 집중해온 사회적 패러다임을 끝내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들의 이후를 사회적으로 보살펴야 한다.
회사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일어나 자신의 생계를 떠나보냈다면 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경력단절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정신적 피해의 회복과 상담은 상담 회차가 정해져 있고 전문 상담사의 인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 역시 더 확대되어야 한다.
구조적인 예방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 회복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하지만, 문제해결의 유일한 만능열쇠는 아니기에 긴 글이지만 짧게라도 구조적인 인식 개선과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역시 중요함을 언급해야겠다.
학교폭력의 구조적 예방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감정을 고양하는 교육, 소극적 폭력에 많은 사람들이 예민해지고, 방조를 멈추게 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여성문제 역시 사회를 향한 과거 반성과 다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평등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그 구조를 재편하는 것으로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성폭력은 암수범죄(해당 범죄가 실제로 발생하였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이다. 아직도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하길 꺼리고, 본인의 피해 정도를 미리 재단하여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지인은 가정폭력을 겪고 여성단체에 상담을 하러 갔다가 여성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 해당하지 않으면 상담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는 것을 듣고는 자신이 그만큼 심각한 범죄의 피해를 입었나 고민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인은 꽤 상태가 심각해 센터에서 신고를 권유할 정도였지만, 지인은 신고를 결국 하지 않았다. 신고를 고민하는 여성들은 그 긴 과정과 열악한 조사 환경과 주변인들의 2차 가해를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박미랑 교수는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에서 부부폭력을 신고했을 때 체포, 중재, 격리의 조처를 취하고 6개월이 지난 후에 피해 조사와 폭력 신고조사를 통하여 가정폭력의 재범률을 측정한 결과 체포된 가해자는 10%의 재범률을 보인 반면 중재나 단순격리조치를 받은 경우는 20~-50%의 재범률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추후에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을 예방하는 데 유효한 대처임을 보여준다.
잘못된 과거를 단순히 덮어두고 없애버리며 더 이상 이 현상이 없다고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또다시 새로운 차별의 현상들을 자리잡게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는 과거와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논의하고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