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거나, 참거나... 화장실 때문에 외출이 고역인 사람들
히든 피겨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단연 '유색인종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왕복 1.6km를 달리는 캐서린의 모습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과거 여자 화장실이 없는 국회의사당에서 일하느라 방광염에 걸렸던 박순천 전 의원을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형마트에 갔다가 동생이 갑작스럽게 화장실을 찾을 때, 다시 그 장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있던 3층엔 멀쩡한 화장실이 있었지만, 급하게 직원에게 길을 물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달려갔다. 잘 뛰지 못하는 동생을 데리고 간신히 1층에서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1층에는 3층에 없는 것이 있다. 장애인 화장실이다.
나는 동생과 외출할 때면 항상 집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한다. 밖에서는 되도록 화장실을 갈 만큼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이것은 불법촬영을 걱정하는 많은 다른 여성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공중화장실 사용을 피하는 것.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은, 성별이 다르고 중증 장애가 있어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동생과 내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적다는 점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공공건물 1층에 설치 의무가 있다. 그 말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화장실을 가려면, 특히 휠체어 사용자의 경우 1층까지 가야 하며 중소형 건물, 오래전 지어진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거나 잠겨져 있거나 여남 화장실 안에 좁은 칸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다. 모두 실제로 봤던 곳이다. 그래서 동생과 외출할 때 화장실 걱정이 앞서고, 당연히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제외하면 갈 수 있는 장소도 적다. 동생은 카페를 가장 좋아하지만, 대부분 여남 화장실밖에 없어 집으로 돌아오다 실수한 적까지 있다. 이것이 우리가 3개의 화장실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최근 모 후보의 '성중립 화장실' 설치 공약을 두고 찬반 양상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성 중립 화장실은 여성이 투쟁해서 얻은 여자 화장실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며, 이것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와 상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 중립 화장실'은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존 화장실을 없애는 것'이 반대해야 하는 일이다. 장애인 화장실이나 가족 화장실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릴 수 있을까? 공공 화장실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고 이에 대한 반대는 인권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여자 화장실을 없애고 성 중립 화장실로 만든 곳만 모은 글이 '한국에 성 중립 화장실이 생기면 안 되는 이유'로 사용될까?
한국에서는 이미 3개의 화장실, 즉 기존 여남 화장실에 모두를 위한 1인용 화장실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회대에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명칭이 성 중립 화장실이 아닌 이유는, LGBT 이슈로 인식되어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한국 다양성 연구소에서도 이러한 화장실 설치를 주장했고, 가장 최근에는 위의 모 후보가 여남 화장실에 추가로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공약으로 걸었다.
공중화장실은 인권의 문제다
그럼 어떤 주장이 추가로 만드는 성 중립 화장실 자체의 반대 논리로 쓰이고 있을까?
[하나]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해도 트랜스젠더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올 것이다."
이런 화장실이 생기면 남성(트랜스 여성 등)과 같은 공간을 쓸 것을 염려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런 화장실이 없는 지금 트랜스 여성은 어떤 화장실을 쓸까? 트랜스 남성은 어느 화장실을 쓸까? 이것은 내가 동생과 있을 때,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여자 화장실을 들어갈지 남자 화장실을 들어갈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한 번도 동생을 데리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적이 없다. 여자 화장실에 있는 성인 남성의 존재는 그 사람이 장애인이어도 누구나 놀라게 만든다. 남자 화장실 문 옆에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잠시 인기척을 듣고 조심스럽게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성 중립 화장실 자체를 반대한다고 이 화장실을 이용할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누군가는 방광염이 올 만큼 화장실을 참아도 결국 여남 화장실을 사용할 것이고, 2개의 화장실은 현재 그 성별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여남 화장실을 여남만 이용하려면 3개의 화장실이 되어야 한다.
[둘] "성 중립 화장실은 트랜스젠더만 사용한다."
현재 1인용 성 중립 화장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화장실 부족과 다양한 사람들, 특히 이성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시설 부족의 대책으로 성 중립 화장실을 꼽는다. 여자 화장실은 그나마 공공건물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다. 남자 화장실의 기저귀 교환대 설치 '권고'는 겨우 2017년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공간에 세면대, 변기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손잡이,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여 모두의 화장실로 만드는 게 3개의 화장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화장실을 1개 더 만들어서 장애인과 이성 보호자, 아기와 함께인 모부, 성소수자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유니버셜 디자인인 셈이다.
[셋] "성 중립 화장실에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자도 남자도 쓸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하면 강남역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 2년이 지나도록 화장실은 전혀 안전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 대상 강력 범죄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여자 화장실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여자들은 남자가 몰카를 설치하거나 엿볼까 봐 구멍을 막기 위해 휴지나 실리콘까지 챙기고 있다.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불법촬영, 폭행, 성폭행한 남성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몰카 판매는 아직도 금지되지 않았다. '화장실 안전'은 책임지지 않고 '화장실 분리'를 대책으로 내세우는 건 정부와 경찰의 게으름이며 여성에 안전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그렇지만 여자 화장실이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여자 화장실을 만들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화장실이 안전하지 않은 이유가 남성들의 '여성혐오범죄'임을 명시하고 경찰과 정부가 몰카 판매 금지, 여성 대상 범죄 처벌 강화 같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나타낼 뿐,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반대할 이유는 아니다.
다시 한번 주장한다. 공중화장실은 사람의 기본 권리이다. 여자 화장실, 장애인 화장실, 가족 화장실은 당연한 일인데, 모두를 위한 성 중립 화장실 추가를 반대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을 없애고 성 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일에 반대하며, 3개의 화장실이 보편적으로 지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