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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평가로 페미니즘 발표하니 '메갈X' 소리 듣더라"

"수행평가로 페미니즘 발표하니 '메갈X' 소리 듣더라"

오마이뉴스 0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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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동 현장에서 청소년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미성년자라는 제도적 한계와 학교라는 굴레가 그들의 목소리를 희석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을 논하는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중 억압'이 가해지기 때문에, 용기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소년을 향한 억압과 성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경기도 부천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소년 페미니즘 그룹 '소란'이 그 주인공이다.

 

열여섯 명의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공존하며 활동하는 소란은, 지난해 9월부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12일, 부천의 한 카페에서 회원 포로리, 알랑, 나날, 녹차, 루테리(이상 활동명)를 만났다.

 

의자 옮기고 더치페이하면 '개념녀', 혐오가 일상화된 교실

 

- 지난 9월에 '부천 청소년 페미니즘 프로젝트; 말하고 생각하고 설치다'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축제를 진행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그 시작이 궁금하다.
포로리 : "부천시에서 '풀뿌리 공동체 지원 사업'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성평등 사업이 활발하지 못했는데, 우리 동아리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광장에 모이는 멋진 축제를 처음으로 기획해보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경기가족여성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날 : "축제는 3주에 걸쳐 진행했다. 첫 주에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쓰기의 말들> 등을 쓰신 은유 작가님을 초청해 여성주의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여성주의라는 언어 혹은 학문에는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도 우리의 대화와 글에 그 시각을 녹여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둘째 주에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함께 '여성주의적 관계 맺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들>은 여성주의를 말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 청소년들의 관계 맺음과 단절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그 점에 주목해 자신의 경험들을 풀어냈다.

 

마지막 날에는 부천 청소년 미디어 팟캐스트 팀과 함께 '버스킹 토크'를 진행했다. 청소년 여성주의자 선언을 진행하고, 부천의 페미니스트 교사분을 초청해 '학교 현장에 페미니즘에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역곡역 근처의 광장에서 진행했는데, 시민들이 오가며 많은 관심을 줘서 뿌듯했다."


알랑 : "축제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어떤 해코지가 있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웃음).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집중했다. 부천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있고, 학교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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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주의를 목표하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포로리 : "'소란'은 '세움'이라는 부천 청소년단체설립준비위원회에 소속된 단체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집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2014년에 준비위원회가 출범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날 : "청소년인 우리가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여성주의가 빠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년이면서 여성인 우리에게는 사회의 억압이 이중으로 가해지기 때문에,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임이 분명했다. 작년에 여성혐오 범죄가 고개를 들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9월에 동아리를 조직해 청소년 여성주의 활동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여성 청소년들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자칫 공격받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스를 수 없는 여성주의의 물결을 만나면서 힘을 얻게 됐다."


알랑 : "개인적으로는 퀴어 인권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면서 호모포빅한 생각이 남아있던 나였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그때부터 성정체성과 젠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주의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성주의 언어를 알고 나니, 일상에서 왜인지 모르게 불편했던 순간들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 예를 들어 어떤 순간들이었나?
나날 : "학부모 총회날에 학생들이 다 같이 의자를 옮겨야 했다. 당연히 여학생들도 같이 의자를 옮기는데, 옆 반 남학생들이 '와, 옆 반 애들 다 개념녀밖에 없네. 우리 반 여자애들 뭐냐'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의자를 옮기는 행위에도 성별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 불편했다."


녹차 : "남성 친구들이랑 밥을 같이 사 먹고 돈을 나눠 내는데 '와 개념녀네' 이런 말을 쓰더라. '개념녀'는 '김치녀'의 반대말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녀'로 지칭 당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알랑 : "학교에서 학생들이 '김치녀'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쓴다. 그리고 '애미'나 '년'같이 여성성을 모욕하는 욕설도 넘쳐난다. '김치녀'의 상위 버전이 '너 메갈이냐?'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교실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 학생들의 혐오 발언에 대한 교사들의 제재는 없나?
녹차 : "학교에선 청소년 혐오,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는 교사들도 많다. 스승의 날 행사로 학생들에게 편지지를 나눠주고 존경하는 선생님께 편지 쓰는 활동이 있었다. 수업 중에 '나는 동성애를 절대 반대한다'고 말씀하신 수학 선생님이나, '여성과 남성의 말하기 방법은 다르다'며 '남성들은 직설적인 반면, 여성들은 상냥하게 돌려 말하는 것을 잘한다'며 화법에 성별적 특성을 부여하시던 국어 선생님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드리고 싶었다. 편지가 잘 전달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알랑 : "미술 시간에 화가인 키스 해링에 대해 배웠다. 선생님은 키스 해링이 게이였다고 말해주셨고, '게이를 조심해라'고 하시더라. 내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그건 동성애 혐오 발언이잖아요'라고 말하니까, 그 이후부터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대화 중간에 '이렇게 말하면 알랑이 발끈할 거야'라고 장난스럽게 넘기시더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차별적 언사를 지적한다는 이유로 친구한테 '너 메갈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 폐쇄적이고 규율의 중시하는 학교 특성상, 페미니즘 언어를 말하기에 학교는 아직도 척박한 공간인 것 같다.
알랑 : "그렇다. 한 친구가 국어 말하기 수행평가로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했는데, '메갈X'라며 욕을 먹었다. 한 명이 그러기 시작하니까 원래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그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러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메갈이라는 낙인이 찍히지는 않을까'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학교 친구들이 모두 보는 SNS에도 관련 글을 쓰거나 기사를 공유하는 것이 어려웠다."


녹차 : "그래서 학교에 가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안다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지금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니까, 그 친구가 '여성주의가 무슨 페미니즘이야?'라고 반문하더라. '그린티가 무슨 녹차야?'도 아니고... 이렇게 아직은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알바하면 '양말 벗어달라'는 변태까지... 여긴 '여혐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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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성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날 : "나는 지난해 탈학교를 했지만, 일상에서도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염색한 내 머리만 보고 '너 불량학생이야?'라고 물어보는 행인도 있었다. 나는 이미 학생이 아닌데 말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예의없는 손님들을 만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알랑 : "나날과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루는 어떤 남성이 내게 와서 '돈을 줄 테니 양말을 벗어 달라'고 하더라. 변태였던 거다. 기어코 안 된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남성 교대자가 편의점으로 들어오니까 그제서야 밖으로 나가더라. 아저씨 손님들에게 '얼평'(얼굴 평가)를 당한 적도 많다."

 

- 차별이 공기처럼 퍼져있는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날 : "페미니즘은 세상 모든 약자들에게 발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나이 위계에서에서 약자인 청소년과, 성별 위계의 약자인 여성, 그리고 두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유일한 해방구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메갈'로 몰리고,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는 억압돼 있다. 페미니즘 언어는 우리 청소년들의 존재가 더 이상 지워지지 않고,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녹차 : "청소년 시기에 페미니즘을 접하다보니, 인권 전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비판에서 논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 장애, 비건, 인종 등으로 관심사가 나아간다는 점이 항상 흥미롭다."


포로리 : "나는 비청소년이지만, 청소년 시절의 꿀꿀했던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성적, 외모 등에 대한 차별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적 기준에 나를 맞추다 보니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했고,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페미니즘의 공이 컸다. 페미니즘은 결국 세상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섹스 토크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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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페미니즘의 언어를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나날 : "큰 행사도 마쳤으니, 당분간은 독서와 토론에 집중할 계획이다.<82년생 김지영>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의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아예 몰랐던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포로리 : "부천 지역에서 하는 행사에 꾸준히 참석할 것이다. 마을 어르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행사에 페미니즘 부스를 차려놓고 있으면 '쟤네 뭐야' 하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부천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페미니즘이 주는 해방감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런 민망함도 감수할 용기가 생긴다."


알랑 : "내년이면 스무 살, 성인이 되지만 청소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복장을 검열받고, 화장했다고 혼나던 기억이 사라지진 않을 거다. 전교의 선생님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알고 계실 만큼 열심히 '말하고 생각하고 설치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던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성인이 되면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청소년 페미니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 '아는 페미' 기획의 공식 질문이다. '소란' 여러분의 다음 페미니즘 모먼트는 언제가 되었으면 좋겠나?
나날 : "우리 '소란' 동아리가 속한 청소년단체 '세움' 구성원 전체가 페미니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다음 모먼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란이 생기기 전에는 우리 안에서도 차별적 발언이 오가곤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애인이 생겼다는 친구에게 '여자야? 남자야?'를 먼저 물어볼 만큼 우리들의 분위기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포로리 : "교육 현장에서의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많이 퍼져서 학교 선생님들이 각성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의 공간에서 페미니즘을 모르면 안 되는구나', '교사들의 성차별 발언은 아주 위험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 그렇게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설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당신은 무엇을 아는 페미인가?

알랑 : "나는 '전교생이 아는' 페미다. 차별 발언을 하는 선생님들, 친구들을 볼 때마다 용기있게 지적했더니 모두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알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루테리 : "'싸울 줄 아는' 페미다. 집안 어른들이 벌써부터 '결혼' '시집'에 대한 얘기를 하실 때마다, 그러한 발언이 왜 잘못된 것인지 또박또박 말할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은 페미니즘 언어를 알고 나서 가능했다."


나날 : "'꿈꿀 줄 아는' 페미다. 나는 학교에서 여성 청소년들도 섹스 토크를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의 욕망이 지나치게 억압된 지금의 현실을 잘 알지만, 그것을 바꿔보겠다는 나의 욕심 역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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