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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업고 국회로 향하는, '수상한' 엄마들

아이 업고 국회로 향하는, '수상한' 엄마들

오마이뉴스 0 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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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풍경을 깨부수고 세상에 나온 엄마들이 있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그 주인공이다. 끝이 없는 가사노동과 독박육아로 고통 받던 엄마들은, '이것은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구조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정치를 직접 해보기로 한 것이다.

 

올해 4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6월에 닻을 올렸다.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난 오늘, 엄마들은 가정과 여의도 국회를 오가며 치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난 24일 서대문구 이진아도서관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조성실·이고은 공동대표, 강미정, 성지은, 김정덕, 정주은 회원)을 만나 그들이 지향하는 미래를 들어봤다.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 만납시다."

 

이 간단하고 명쾌한 제안이 엄마들을 정치로 끌어들였다. 유쾌한 작당을 모의한 사람은 장하나 전 민주당 국회의원. 장 전 의원은 올 3월부터 <한겨레>에 '장하나의 엄마정치'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그 첫 화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124년 전 뉴질랜드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뉴질랜드 남성들이 천부인권에 따라 그들의 정치권력을 여성들과 평등하게 나누어서가 아닙니다. 여성들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여성 스스로가 분노하고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하나, <한겨레>, '엄마들이 정치에 나서야만 '독박육아' 끝장낸다!')

 

장 전 의원은 기사 하단에 페이스북 페이지 주소를 게재했다. 이 소통의 공간은 현재 '정치하는 엄마들'의 모태가 됐다. 엄마들은 페이스북에서 대화를 나누다 오프라인으로 만나보기로 했다. 드디어 시작된 4월 22일 첫모임. '엄마의 삶 그리고 정치: 독박육아 대 평등육아'를 주제로 30여 명의 엄마들과 아이들이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됐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각자가 엄마로서 겪었던 모순들에 대해 말하다 보니 자기소개에만 두세 시간이 걸렸다. 엄마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간절했던 것"이라며 첫 모임을 회상했다. 남편이나 동서, 회사 후배와 함께 온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혈혈단신으로 '정치하는 엄마들'의 문을 두드린 이들이다. 엄마가 겪는 문제들을 더 이상 사적 영역에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쉬이 움직일 수 있던 건 아니다. 모임에 한번 참석하는데도 여러 제약이 뒤따르곤 했다. 회원 성지은씨는 출산 직후 장하나 의원의 연재를 보기 시작했다. 첫 출산 이후의 어려움들이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장 의원이 공지한 첫 모임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임 시간이 남편의 직장 행사와 겹쳐 결국 참석 할 수 없었다. 지은씨는 그날 많이 울었다. 2차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찾았으나, 그 날은 아이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가야했다. 결국 6월 11일 창립총회가 돼서야 첫 발을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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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번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버거운 엄마들이지만, 그들의 간절함만은 막을 수 없었다.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쳐 첫 모임을 한 후, 두 달 만에 비영리단체 형태인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었다. TF팀을 꾸려 매주 회의를 진행했고, 회원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을 보탰다.

 

가정 내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공적으로 논의됐다.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언니'라 부르며 평등한 관계를 만들었고, 누구나 의제를 던질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절실함과 간절함이 촉매제가 돼 34명(창립 발기인수)의 회원들이 서로의 용기가 되기로 약속했고, 현재 정식으로 가입서를 제출한 회원은 90여 명(카페 회원 수 517명, 페이스북 그룹 회원 수 1116명)에 이른다.  

 

활동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든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현장 활동을 진행할 때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아 대안적 방법을 고안했다. 지난 18일,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을 진행할 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 화상 통화 발언시간을 마련했다. 엄마들은 각자의 집에서 목소리를 내며 회견에 참석했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상황을 공유했다.

 

이렇듯 '정치하는 엄마들'은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활발히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조성실 대표가 웃으며 자평했다.

 

"주커버그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엄마들의 치열한 모습이에요."

 

'독박육아'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엄마들의 작당모의

 

이들의 절실함은 '독박육아'의 늪 안에서 피어올랐다. 10년 동안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이고은 공동대표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에 첫 아이를 낳은 이 대표는 선배들의 앞선 '투쟁' 덕분에 첫 번째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 육아휴직이었다.

 

이 대표는 "법적으로는 당연히 쓸 수 있었지만, 사내에서 둘째까지 육아휴직을 쓴 경우가 없었다. 눈치를 봐가며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한 첫 사례였다"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부모의 육아휴직 사용이 쉽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결국 이 대표는 두 아이 양육과 일을 도저히 병행할 수 없어 퇴사를 결정했다.

 

"'독박육아'를 하면서 노동시간이 길고 퇴근이 일정치 않은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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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강미정씨는 독박육아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싶었다. 미술을 전공한 미정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뭘 그려야하지' '무엇을 표현해야하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러던 중 '정치하는 엄마들'을 알게 됐다. 한국 공동체와 사회로 시선을 넓히면서 미술을 통한 표현 욕구가 되살아났다.

 

"국회의원의 83%가 남성이고 그들의 평균재산은 41억 원이다. 이러한 정치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절대 대변할 수 없다"라는 장 의원의 말에 큰 울림을 느꼈다. 본인의 특기를 살려 엄마들의 목소리를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다. 미정씨는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치열한 목소리를 표현한 그림은 '정치하는 엄마들'을 상징하는 로고가 됐다.

 

각자 다른 동기를 지니고 모였으나, 이들의 경험은 모두 한 곳으로 수렴했다. 엄마들은 독박육아의 원인을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가정 내에서만 찾지 않았다. 독박육아의 주범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시스템과 문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평등육아는 엄마와 아빠 간의 다툼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다.

 

때문에 정치하는 엄마들 뿐 아니라 아빠와 아이들도 함께 나섰다. 회원 성지은씨의 남편은 창립총회에 아이를 데리고 함께 올 정도로 아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성실 대표의 남편 역시 활동가와 엄마의 경계에 선 아내의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은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는 첫 실마리가 됐다. 네 살 아이를 둔 회원 김정덕씨는 "독박육아를 하다 보니 남편-아이-나(엄마)사이에 기형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관계성에 주목하고, 불평등한 관계성을 형성하는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구조적 진단은 '노동' 문제로 연결됐다. 워킹맘들의 육아를 위해서도, 배우자와의 육아 분담을 위해서도 현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건드리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일하던 여성이 출산 후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퇴사하면 경제권을 잃습니다. 경제 활동 여부는 가사 및 육아 분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문제는 한국 엄마 둘 중 한 명이 첫 아이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평등육아가 요원해지는 건 물론이고, 저출산도 악화될 겁니다." - 조성실 대표

 

이고은 대표는 직장 내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분명히 짚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남성이 받는 임금을 100으로 가정할 때 여성의 상대임금은 63.7%로, OECD 국가 중에서도 격차가 큰 편에 속한다(2017, 한국고용정보원, '최근 성별 임금격차 축소 원인 분석'). 

 

맞벌이 부부의 경우 '10만 원이라도 더 버는 사람'이 일을 계속하는 게 온당하다고 여겨지고, 결국 사표를 쓰는 건 여성이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을 하고자 할 때 주어지는 노동 환경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 형태가 대부분이다. 실직한 엄마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란 무척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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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엄마들'은 궁극적으로 엄마와 아빠 모두의 노동시간을 줄여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회를 꿈꾼다. 회원들끼리 토론을 하다보면 '기승전-노동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단다. 그 정도로 보육 환경 개선에 있어 노동시간 단축은 필수적인 열쇠다. 그래서 이들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칼퇴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엄마도, 아빠도 칼퇴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평등육아할 수 있다고 봤다.

 

보육과 노동. 두 가지 큰 주제에 초점을 맞춘 '정치하는 엄마들'은 국민 정책 제안 플랫폼인 '광화문 1번가'에 각종 법안들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이슈에도 손을 내밀어 연대 방안을 모색했다.

 

칼퇴근법 통과 촉구를 시작으로 ▲ 특권학교 폐지 촛불 시민행동 ▲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집단휴업 우려 기자회견 ▲ 식품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대체식품제공(맞춤급식)의무화 및 관련 법안 개정 촉구 ▲ 비비탄 등 총기류 장난감 규제를 위한 활동 ▲ 성평등 교육 제안 및 연대활동 ▲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관련 집단 소송 준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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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들은 '혐오표현금지' 법안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혐오가 만연합니다. 장애인, 소수자, 엄마를 막론하고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 재생산되고 보편화됩니다. 맘충 논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맘충'은 카페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만 쓰는 게 아닙니다. 기자회견에 나간 엄마들에게도 여지없이 따라붙습니다. 그 누구보다 사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엄마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희망적인 현상도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겁니다." - 조성실 대표

 

실제 엄마들이 기자회견에 나가면 악성 댓글이 달린다. "왜 아이들을 데리고 기자회견을 나가냐.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라" "아동학대다" "맘충이다"라는 식이다.

 

회원들은 이러한 댓글과 맘충 논란을 보며 혐오발언금지법 관련 팀을 꾸렸다. '사회적 모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답게, 엄마로서 겪은 부조리함, 차별과 혐오에 문제제기 하는 것은 사회 전반을 바꿔가는 단초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현재는 유럽의 사례 등을 적극 참고해 한국 실정에 맞는 법안을 발의하고자 준비 중이다.

 

마음 속에 담아뒀던 '울분'... 이젠 공론장에 풀어낸다

 

이밖에도 '정치하는 엄마들'은 '노키즈존' '아동의 놀권리와 놀이터 안전' '육아종합지원센터' '산후우울증' 등의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모든 건 '엄마 정치'의 관점에서 풀어간다.

 

이토록 다양한 의제들을 다루기 위해, 여러 소모임도 꾸렸다. 산후·육아 우울증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힐링팀'. 부모교육, 아동인권교육, 공동체교육 등 아이들과 양육자가 공존하는 세상을 고민하는 '함께교육팀'. 엄마들의 이야기를 엄마들의 목소리로 읽고, 쓰고, 나누는 독서모임 '엄마들의 책장' 등이 그것이다.

 

모든 의제 선정은 회원 개인의 자발성에 기반한다. 누군가가 다루고 싶은 의제를 들고 오면, 동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함께 팀을 꾸린다. 이렇게 '세포 증식'을 하듯 팀을 꾸리기 때문에 다양한 의제들을 폭넓게 다룰 수 있다.

 

"당장 다뤄야하는 문제가 이렇게 많다는 건 그동안 엄마들의 문제가 공적으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는 증거예요. 수많은 엄마들이 각자 가정에 고립되어 자신의 문제를 사적인 네트워크에서만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엄마들의 문제는 공공의 장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 이고은 대표

 

정치하는 엄마들은 뿔뿔이 흩어져있던 엄마들에게 직접민주주의의 광장을 제공하고,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 대표는 "엄마들 각자가 '사적인 것'이라 여겼던 문제들이 결국 구조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회원 정주은씨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깊이 공감했다.

 

"12년 동안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개인적인 화로 쌓아두고 있었어요. 워킹맘 생활 12년 만에 이러한 공론의 장이 생겨서 너무나 기뻐요.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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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들이 5살, 2살이에요. 이런 운동은 5~10년이 지나도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싸움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운동의 성과는 당장 내 아이의 것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밤을 새가며 회의하고, 아이들을 업고 안고 기자회견에 갑니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와 내 아이뿐 아니라 사회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싸웁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계속될 겁니다." - 조성실 대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가정의 천사'는 '정치하는 엄마들'을 통해 사라질지 모른다. 사회는 엄마들을 '맘충'으로 만들었지만, 엄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 정치의 토양을 더욱 단단히 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남편과 아내가 평등하게 육아를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조정이 필요하다."

 

이토록 명쾌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엄마들은 오늘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나간다. 이것은 조성실 대표 말처럼 우리 세대에서 결과를 낼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은 한 세대, 두 세대, 앞당겨 변화를 가져올 거란 희망을 준다. 엄마들의 정치는 그래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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