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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양당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양당하기'를 거부한다

오마이뉴스 0 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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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우리는 가장을 다른 말로 '부양자'라고 한다. '부양'이란'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낮고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던 시대에 살았던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러한 가장 및 부양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과는 다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역사적 투쟁의 결과로 여성은 남성과 함께 교육을 받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남성은 더 이상 그 모든 가장의 무게를 홀로 견디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새로 아버지가 된 이들도 그들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장 및 부양자가 되고, 그의 아내는 책임져야 하는 존재 혹은 피부양자가 된다.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여성은 높은 교육수준과 증가한 경제활동 참여율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걸까?

 

왜 여성은 여전히 부양받는가?

 

우리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교육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는 말을 듣던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대학진학은 남녀 모두에게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학업을 마치고 취직을 하는 과정에서 둘 간의 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여성은 구직의 과정에서 차별을 받으며, 소위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지 못할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높다. 또한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미비한 사회에서,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 더더욱) 부부는 누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누가 더 소득이 높은지, 누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졌는지를 고려한 결과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대개 여성의 휴직 및 퇴직으로 이어진다.

 

육아를 몇 년 하고 나면 여성은 다시 일을 시작하는데, 주로 여성의 구직 욕구와 가정 내 부수입의 필요성이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다시 구직을 하면서 여성은 높은 문턱에 부딪히게 된다. 경력이 단절되어 '좋은 일자리'는 더욱 구하기 힘들고, 능력이 있더라도 육아와 가사를 병행해야 해 장시간 노동하는 '정규직'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소득이 생기더라도 대개 남성에 비해 낮으며, 이러한 일자리는 사회보험에 가입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남녀 모두 사회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경우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인정받아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사회보험에 가입될 확률이 여성에 비해 높다. 반대로 여성은 피부양자로서 제도에 가입될 수 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렇듯 노동시장에서의 차별로 인해 여성은 사실상 가정의 주 소득원이 되기 어려우며, 그것에 더해 사회적으로 돌봄 및 가사 노동이 '여성의 일'로 간주되면서 여성은 자신의 소득원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다시 찾은 일자리에서도 여성은 주로 저임금에 머무르며, 사회보험가입도 쉽지 않다. 여성이 일과 자신 스스로를 부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합리적인' 선택은 결국 그러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렇게 여성은 사회적으로 배제되면서 부양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부양 받음이 아닌 부양 당함

'피부양자'라는 개념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나타낸다. 여성은 누군가의 부양이 필요한 자이며, 남성인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존재인 것이다. 부양의 관계는 결국 권력의 관계로 이어진다. 부양을 받음과 동시에 삶의 많은 결정권은 나를 부양해주는 자에게 부여된다. 이 관계를 거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부양을 받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정상 범주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신으로 스스로를 부양하는 여성이나, 2인 이상 가구의 주 소득원이 되어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특별히 대단한 존재이거나 특별히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 '정상범주' 내에 속한다는 것은 불안정한 사회 내에서 허구적 안정감을 부여하면서 여성 스스로도 그 부양 받음에서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부양'이라는 개념에 의해 형성되는 권력구조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형성된 것으로, 이러한 기제에 의해 더욱 견고해져 왔다.

 

부양자에 속한 피부양자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권리를 가진 것 같지만 사실상 부양자에 의해 결정되는 반쪽짜리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부양하는자로 사는 것은 처음부터 여성의 선택권 영역 밖의 일이었다. 여성이 가진 '부양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사실상 혜택이 아닌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따라서 부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며, 피부양자로서 부여되는 국가의 '보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호가 아닌또 하나의 억압 기제로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여성은 왜 부양 '당해야' 하는가?

 

부양 당하기를 거부한다

 

이 사회는 가장으로서 홀로 부양자가 되어야 하는 남성의 삶을 '가장의 무게'라고 부르며 미화하고 강조하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많은 여성들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남성 가장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곤 했다. 남성이 밖에서 무게를 짊어질 때에 여성이 짊어져야 했던 가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음에도, 경제적 영역이 아닌 여성이 감당해온 '부양'의 영역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사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아버지들만큼이나 무겁게 가족을 부양해왔다. 그런데 그들은 '비공식적' 혹은 '비생산적'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철저히 부양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해왔다.

 

또한 부양자로서의 지위는 여성이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된 뒤에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유사 혹은 더 높은 교육수준을 가졌음에도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차별 받아왔고, 경제적 부양자로서 설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왔다. 맞벌이라는 이름 하에 남성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더라도 이들은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사회제도는 이러한 결과로서 생활 능력이 없어진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을 억압해왔다.

 

따라서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양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생산 비생산 영역 모두가 가족을 위한 '부양 행위'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이 노동시장에서도 가정 내 육아 및 가사의 영역에서도 같은 선에 서서 경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이 교육받고 똑같이 경쟁해서, 부양할 권리도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 우리, 그 무거운 '가장의 무게'를같이 나눠 지고, 나는 나를, 너는 너를,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부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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