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미투(PayMeToo), 시대를 관통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17년부터 전국 지부들과 함께 '페미-노동' 아카데미를 개최하였다. '페미-노동'은 여성노동자회가 페미니즘 관점으로 노동문제를 바라보고 재구성하자는 의미를 담아 만든 신조어이다. 올해는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2018 페미-노동 캠프] 일하는 페미니스트, 싸움의 언어를 찾아서"를 지난 7월 13일부터 2박 3일동안 숙박교육으로 진행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80여명의 여성노동자, 학생, 활동가 등이 서울여성플라자에 모여 총 5강의 강좌와 토론 및 발표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페미니즘 관련 이해를 높이고, 페미니즘 관점으로 노동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번 캠프 내용과 참여자들의 에너지를 공유하고자 캠프 참여자의 참여 후기를 총 6회의 연재로 기고한다.
[2018 페미-노동 캠프 후기]
세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로 밀도 높은 강의였다. 또한 약간은 뻔한 내용이리라 지레 짐작했던 내용을 뛰어넘어 새로운 '쟁점'들을 환기시켜주며 '관점'을 제공해주는 기회였다. 강의는 총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는데,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여성 청년으로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주제들이었다.
1. 무엇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국미애 선생님은 첫 번째 챕터로 수많은 여성 정책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왜 개선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원주의적 오류(reductionism)', '생태적 오류(ecological fallacy)'와 같은 접근의 오류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은 여성의 노동에 대한 설명의 오류로 이어진다. 노동시장의 이탈, 진입, 여성노동의 과정을 모두 전형적, 규범적인 생애주기의 내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정책 속에서)여성들에게는 '여성 인재'나 '경단(경력단절) 여성'의 선택지 뿐이다."
이렇듯 전형적인 여성, 정책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하게 되면 실제의 여성-청년여성, 노년여성, 저소득여성, 장애여성 등-이 사라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인식의 성찰에서부터 정책목표 검토, 추진체계 혁신, 성과평가 개선까지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2. 페이미투(PayMeToo), 시대를 관통하다
두 번째 순서는 어찌 보면 진부하다고 느낄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한국의 성평등 수준과 유리천장 지수, 젠더(성별) 임금격차 수준, 저임금 근로자의 성별 비율 등이다. 사회문제에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대한민국의 순위가 어디쯤인지 쉽게 맞힐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지수는 꼴찌, 나쁜 지수는 1등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살기 힘든 '헬조선'이라는 주장으로 묻히는 여성들의 호소를 숫자들이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구체적인 자료들, 특히 서울시의 자료를 많이 제시해주었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시 내에서의 성별 고용률은 남성 69.7%, 여성 51.3%로 나타났다. 그러나 월평균 임금은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는데, 여성 임금근로자의 57%가 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았으나 남성은 27.2%에 불과했다. 같은 직종(직업)이나 종사상지위(고용형태) 내에서도 성별에 따라 차이가 컸다. 같은 직업, 같은 지위를 가졌더라도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수많은 여성청년들이 공감을 표했던 것은 이러한 실태를 직‧간접적으로 겪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3. 경력단절여성, 왜 직장을 그만두는가
법과 제도에서 정의하는 '경력단절여성'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서부터 세 번째 챕터가 출발했다. 현행 법령은 (기존에)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까지 모두 '경력단절여성 등'으로 포괄한다. 단절(경제활동의 중단)의 원인 역시도 '혼인‧임신‧출산‧육아와 가족구성원의 돌봄 등'으로 한정한다.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경단녀'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렇게 'M자 곡선(M자 커브)'속에서 재현되는 여성상이 포괄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여성들의 모습이 존재한다. '경단녀'가 다 같은 '경단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시 데이터에서는 여성의 학력이 높을수록 노동시장 재진입 가능성이 낮으므로 대졸이상의 경우는 M자가 아니라 L자 형태의 경제활동참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미애 선생님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통계조사는 기존의 통념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응답자들이 규범적인 답변을 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응답자들의 세부적인 차이를 알 수 있는, 기억 왜곡과 규범적 답변을 최소화하기 위한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노동시간 단축, 누구의 어떤 시간?
최근 몇 년 사이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감소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노동시간 논의들이 빠져 있는 함정이 있다. 공적 영역의 노동, 임금노동만이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사적 영역으로 여겨지는 가정 내의 가사, 돌봄, 재생산노동은 성별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담되고 있다(한국이 특히 그러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이 차지한다. 이렇듯 젠더에 따른 시간 불균등(Time divide)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5. 젠더 노동과 간접차별
행위자가 차별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가 특정 집단에 불리했다면 그것 역시도 차별이다. 이를 '간접차별'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KTX 여승무원 간접고용 문제, 농협 사내부부 우선해고 문제, 금융권의 배치, 채용 성차별 등의 사례들을 간접차별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의 해소방안으로 제시된 대책들이 주로 직접차별의 대책이며 간접차별의 해소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성평등한 노동, 여성노동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법제도를 잘 준수하는 것 이상의 적극적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알파걸'들이 휩쓰는 '여성상위시대', '역차별'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성별로 인한 36.7%의 임금격차가 온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빼앗긴 36.7%'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들을 수 있었던 유익한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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