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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야 뭐야?

조선시대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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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에 남편 여의고 3년 상을 지내며 강포한 놈이 자신을 더럽힘을 두려워 칼을 차고 끈을 띠고서 맹세하기를, '칼로 죽지 못하면 끈으로 목매어 죽으리라' 울면서 사람들과 마주서지도 않아 홍문을 세웠다."


이는 <삼강행실도> 중 '열녀도'에 등장하는 김해의 열녀 사례이다. 고리타분한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고 있는 <삼강행실도>에 대해서는 누구든 한 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 교육서 가운데 대표인 것이 <여사서><삼강행실도><소학 언해>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최초에 간행되고 또 널리 유포되었던 대표적인 서적이 <삼강행실도>이다. 세종 6년부터 철종 10년에 걸쳐 17차례 이상 간행되 었던 <삼강행실도>는 '효자도', '열녀도', '충신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유교이념에 입각한 삼강 이념의 실천을 교육하기 한 체계 교육서다. (정지영. 2001)
 
<삼강행실도>는 충신, 효자, 열녀를 장려하는 글과 그림으로 백성들에게 유교(성리학) 사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교육하고 주입한다. 여기서 '열녀'는 남편을 위하여 정성을 기울여 살아가는 아내, 정조를 지키지 못할 '위기'에는 목숨을 던지는 '훌륭하고 마땅한 여성'을 말한다. <삼강행실도>는 개인의 몸과 일상에 '가장 옳은 것'을 국가가 상정하여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개인의 몸과 일상의 영역에는 죽음 또한 포함된다. 강간당하기 전에 '잘'죽어버려서 상을 내리는 국가라니. 물론 이제는 <삼강행실도>에 나오는 열녀 사례를 듣고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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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열녀' 사상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조선시대 때의 바로 그 개인 몸 통제를 답습하고 있다. 바로 낙태죄. 낙태죄는 국가가 버젓이 법으로 태어나지말아야하는 사람을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자보건법'은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규정한 법으로 1973년 개정되었다. 


1. 본인 또는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준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4. 친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5. 임신이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 외의 임신중절은 불법이다. 임신한 부녀가 약물을 이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스스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269조 1항).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이 5가지 경우는 사실상 이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을 가리킨다. 장애인, 감염자, 강간 피해자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경우의 주체이지만 그 권리는 없는 임신한 여성은 어떠한 개인의 목소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장애, 전염질환, 친인척간 임신(기형아 가능성)'에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항목은 인간을 우생학적으로 구분하여 '우등'과 '열등'을 줄세우고 있다. 이런 차별 관념은 일상에서 또한 적용되기에 쉽게 목격할 수 있다. 2018년, 장애인은 최저임금법의 적용 제외 대상이다.

 

2016년, 필자가 유니클로에서 일할 당시 함께 근무한 장애인 노동자는 아침일찍 출근해 하루 5시간을 창고에서 단순노동만 하고 손님들 모르게 조용히 퇴근했다. 그마저도 점장이 바뀌며 해고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일상에서, 길에서 장애인을 자주 보지 못하는건 그들이 존재하지않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나오지 말라고 해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설(대중교통, 인도, 신호등, 매체 자막, 좌석, 화장실..)과 고용 제한 등 장애인 접근성을 한 번만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 나라는 장애인을 '사회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강간, 중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항목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라기보단, 차라리 조선 때처럼 '여성이 범해졌다'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혐오인식이 반영된 것이 맞겠다. 여성이 경제적인 이유로, 생계의 문제로, 인생 계획의 이유로 스스로 몸을 통제할 권리를 주창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왜 강간을 '당한'것에만 있어서 감히 '허용'을 해주는 것인가.

 

이처럼 낙태 예외 조항은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임신한 여성이 스스로 낙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법문으로서 규정되어 있다. 또한 배우자 동의없이 낙태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 명시하는 '배우자 동의'조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비혼여성이나 십대 여성의 임신은 원천적으로 합법적 인공임신중절 가능성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낙태 예외 조항은 국가에서 '잃어도 되는 사람'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낙태죄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정상'위계를 짓고 '비정상'을 탈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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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한국의 가족계획정책은 국가의 출산정책을 근본적인 사회변화라든가 복지제도의 증진과 연결짓지 않아왔다. 오히려 국가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가정에게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왔다. 낙태에 대한 처벌, 낙태죄가 이에 해당한다. 임신중절에 대한 관심은 규제가 아닌 허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낙태 증가는 여성들이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주체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젠더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회문화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이다.

 

여성들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이 낙태를 줄이는 방법이며, 저출산의 원인은 낙태가 아니라 육아책임의 불균등한 배분과 정상가족 외의 공동체에 대한 안전망 부재이다. 따라서 기존의 정상가족 중심주의로 인해서 한국사회에서 출산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여성을 지원하는, 보다 포괄적인 출산 지원 정책이 고민되어야 한다. 또한 법률혼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인식을 넘어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사회적 집합 책임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가 선별적으로 비장애인 정상가족인 '정상 시민'을 상정하는 현 체제를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권은 장애와 성별에 상관없는 평등한 고용부터, 혈연 외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인생 동반자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까지 우리 삶에 다양하게 주어질 수 있다. 국가는 시민에게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경제적인 의료행위와 일상을 보장하여야한다. 

이렇게 임신,출산,양육에 관련하여 다양한 가족 형태, 그리고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전제될 때 비로소 지금과는 다른 결정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데 어떻게 낙태를 허용시키냐!'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본인의 생각'인가? 법을 제정한 기득권층이 왜, 무엇을 위해 법을 제정했는지 설명하기위해 그럴듯하게 내세우는 '그들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내 생각'이 맞는지 점검하고, 다시 한 번 통찰해서 '내 생각'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삼강행실도>를 보며 모두가 '그런건 조선 때나 일이지'하며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 당시의 조선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조선시대 기득권층의 사상을 주입당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열녀들이 국가의 통제를 거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아둔해서가 아니다. 국가와 백성 사이 권력 차이로 인해 당시 기득권인 '양반'생각이 백성 본인들 생각으로 이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역사, 문화와 전통이라고 일컬어지는 유교식 가부장제는 사실 역사가 깊지 않다. 가부장제 그 근본은 훨씬 전이겠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유교식 가부장제는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에 의해 위기의식을 느낀 양반계층(구향)이 매관매직한 부농(신향)을 견제하고 구분하면서 그 형태가 견고해졌다. 태생 양반(구향)과 천한 출신 양반(신향)을 구분짓기 위해 구향이 신향은  따라하기 힘든 제사와 학문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굳어진 유교적 가부장 가족 체계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답습되는
1. 가족 구성원 중 아버지의 독점적 지배권 
2. 가산에 대한 가장의 독점적 소유
3. 가족의 영속성을 실현할 장남의 가계 계승권
을 띄게 된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바탕을 둔 이러한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를 강화하기위해 또한 중요한 것이 효와 정절이었다. 집안에 오직 한 명인 가부장이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어야 양반 타이틀을 대대로 유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과부의 재가(재혼)를 금지하고 효자나 열녀를 표창한 것은 그러한 체제의 일환이었다. 국가는 가족의 확장 형태를 띄고 구성원은 국가가 지정한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한 이러한 체제가 과연 과거만의 이야기일까?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지나간 역사가 있는 것처럼 지금 흘러가는 역사도 있다. 그 흐름을 자꾸 멈추며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역사를 방해하는 훼방꾼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주체이다. 주체로서 역사를 알고 기억하고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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