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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딸 캠프에 따라나선 엄마, 뭉클했다

페미니스트 딸 캠프에 따라나선 엄마, 뭉클했다

오마이뉴스 0 8,421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17년부터 전국 지부들과 함께 '페미-노동' 아카데미를 개최하였다. '페미-노동'은 여성노동자회가 페미니즘 관점으로 노동문제를 바라보고 재구성하자는 의미를 담아 만든 신조어이다. 올해는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2018 페미-노동 캠프] 일하는 페미니스트, 싸움의 언어를 찾아서"를 지난 7월 13일부터 2박 3일 동안 숙박교육으로 진행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80여명의 여성노동자, 학생, 활동가 등이 서울여성플라자에 모여 총 5강의 강좌와 토론 및 발표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페미니즘 관련 이해를 높이고, 페미니즘 관점으로 노동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번 캠프 내용과 참여자들의 에너지를 공유하고자 캠프 참여자의 참여 후기를 총 6회의 연재로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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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 오기 바로 전날, 살면서 가장 짧게 머리를 잘랐다. 긴 머리를 포기하고 짧은 머리로 자를까 하는 고민을 꽤 오랫동안 하면서 머리를 자르고 나서 듣게 될 '왜 잘랐냐', '머리 길 때가 더 예뻤는데' 등등의 온갖 반응들을 이미 상상하고 대비를 해두었다. 그런데 캠프에서는 그런 모든 무례한 시선과 질문들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캠프에 있는 2박 3일 내내 온전히 내 자신으로 존재하는 기분이었고, 자유로웠다. 또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캠프 참여자 분과 이야기할 때, 나이나 사는 곳으로 소개하는 게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나 캠프에 오게 된 이유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엄마의 은근한 만류에도 시원하게 머리를 자른 나를 보고 엄마는 '너도 네 마음대로 하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하고 물어보셨다. 엄마 마음대로 한다는 게 뭘까 상상하며 일주일 간 여행이라도 다녀오시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엄마는 다음 날 있을 캠프를 같이 가시겠다고 했다. 캠프에서 만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캠프에 엄마랑 같이 왔다고 이야기하니 모두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기는커녕 나에게 페미니즘 좀 그만하라고 하시던 분이셨다. 내가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자유로워진 것도 있지만 그만큼 불편하게 느끼는 것도 많기에 한숨을 쉬고 때로는 욕을 하는 때가 더 많아지기도 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갑자기 딸이 화가 많아졌고, 그 원인은 쌓여가는 페미니즘 도서들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랬던 엄마가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야 딸과 대화가 통하겠다는 생각을 하셔서 캠프에 처음으로 오게 된 것이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처음 만나 이야기할 때, 엄마가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엄마의 이름 석 자로 자기소개를 하고 온전히 한 주체로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모습 보는 것 자체가 뭉클했다.

첫번째 강의로 이나영 교수님의 <말하고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의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역사를 바꿔 오신 페미니스트 분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각자의 목표와 방향은 다 달랐지만, 여성들이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끊임없이 말하고 거대한 구조와 싸우셨던 많은 분들이 계신다. 우리나라에서도 윤락 행위라는 단어가 성매매로, 정조 침해가 성폭력으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가정폭력으로 정의되면서 법도 바뀌어간 것을 보고 언어로 정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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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의로 '스쿨 오브 무브먼트' 대표님들이 진행해주신 <여성 셀프 디펜스 No Woman No Cry> 강의 때는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뛰어볼 수 있었다. 셀프 디펜스란 그냥 호신술과는 달리 정당 방위, 정당 방어의 개념이 들어간다. 또 스포츠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존재하고, 순위가 매겨지지만 셀프 디펜스에서는 아니다. 평소에 실제로 몸으로 부딪히며 싸워본 경험이 없으니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더 크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내가 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훈련을 하면서 조금만 뛰었는데도 숨이 찼고, 짝을 지어 어깨나 무릎 등의 부분을 공격하고 막고 피해보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공격을 잘하고, 생각보다 방어를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안타까웠던 것은 그 상황에서까지 겨드랑이가 보일까봐 신경이 쓰여 팔을 높이 못 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운동을 왜 즐기지 않게 됐나 생각해봤더니 운동을 생각하면 체중 감량과 몸매 관리와 연결되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를 기억해 봐도 몸을 키워라, 근육을 키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스쿨 오브 무브먼트' 대표님 두 분께서 뺨을 공격하는 상황에 대한 셀프 디펜스를 앞에서 시범으로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기만 했는데도 덩치가 큰 남성이 비교적 체격이 작은 여성의 뺨을 때리는 그 모습에서 나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앞에 계신 파트너 분께 설명을 했고, 파트너 분은 괜찮은지 나의 상태를 살펴 주셨다. 훈련을 할 때 상대방의 손바닥을 치고, 뺨을 밀어보는 과정을 해 보았다. 계속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힘들기도 했지만, 만약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내게 뺨 맞는 장면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을 텐데 직접 해보면서 오히려 극복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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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캠프는 나와 같이 SNS 상에서 홍보를 보고 신청해서 온 20대 페미니스트와, 기존에 활동하시던 여성단체의 활동가이신 페미니스트 분들이 함께 모인 자리여서 더 의미 있었다. 엄마가 처음 캠프 같이 가겠다고 말씀하실 때 '나같이 나이 든 사람도 가도 되나?' 하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 질문은 내가 처음 캠프 공지를 발견하고 신청할 때도 스스로 던졌던 질문이다. '페미-노동 캠프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사실상 현재 신분이 학생이라서 별다른 노동의 경험이 없고 노동자라고 할 수 없는 내가 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주저했었다. 물론 고민은 잠시, 바로 신청했지만 말이다.

 

결국 엄마와 나의 고민 모두 필요 없었던 고민이었다. 어느 자리에 참석할 때 눈치를 보지 않고 그냥 가고 싶으면 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강의를 들을 때 엄마와 같이 앉아서 강의 중에 나오는 '백래시(backlash)', '앨라이(ally)', '텀블벅' 등 엄마에게는 생소할 용어들을 설명해드리느라 바빴고, 그 과정은 즐거웠다.


국미애 연구위원님의 <빼앗긴 36.7%를 찾아서 : 여성노동의 쟁점과 관점> 강의에서는 통계와 영상으로 설명해주셔서 더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기업의 여성 문제에 대한 구조적 이유와 다양한 계층의 사례를 분석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님의 <차별을 부수는 '성평등 노동' 강의>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젠더 불평등과 계급 불평등이 얽혀있다는 것을 느꼈다. 강의 중에 본 KTX 승무원들의 영상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가여워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자신들의 처지를 투영했다고 느껴져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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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인 류진희 문화연구자님의 강의 중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 드러나게 된 것이 언어로 고발함과 동시에 기록하는 여성들의 힘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캠프의 마지막 순서로 서로에게 격려하는 말을 건네며 수료증을 줬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캠프에 참여하신 분들께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지금까지 겪으신 모든 아픔들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캠프를 열어주셔서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을 마련해주시고,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희망을 전해주신 한국여성노동자회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 [2018 페미-노동 캠프] 자료집 다운로드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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