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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바꾼 줄 알았는데... 집착이었다

습관을 바꾼 줄 알았는데... 집착이었다

오마이뉴스 0 4,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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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이자 정신건강 운동가인 제스 베이커는 '매력적이고 뚱뚱한(Attractive&fat) 캠페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저서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Things no one will tell fat girl)>를 찾아 읽는데 어느 대목에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세계를 장악한 '건강 집착증'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 오늘날은 모두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건 끔찍해. 하지만 극단적으로 마른 것도 끔찍하지. 모두 건강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친구들이여, 우리의 건강 집착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 "몸매는 걱정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써." 이런 말을 하면서 힘을 되찾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멋지게 속은 거다. 표현만 달라졌다 뿐이지, 우리의 신체는 전과 똑같이 억압당하고 있다.

화장과 긴 머리, 몸매가 부각되고 움직이기 불편한 모든 옷, 주기적으로 몸무게 재기, 저열량에 단백질과 식이섬유 위주로 구성된 식단.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면서 나는 오래된 습관을 하나씩 버렸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내버린 것이 체중에 관한 강박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제스 베이커의 일침은 깊숙한 곳에 감춰 뒀던 의심을 들추기에 충분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건강 집착증인가?'

사실 나는 제스의 책을 읽기 전에도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너무, 과도하게 몸을 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나는 '운동하는 여자'를 연재하는 동안 틈만 나면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운동을 직업으로 삼거나 취미로 즐기는 여성들과 함께 운동할 건수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건강한 몸에 관한 환상을 키웠고 특히 크로스핏 선수의 몸을 선망했다. 전신에 근육을 커다랗게 키우고 역도 등으로 흉통이 커진, 십일자 복근이 아니라 커다란 식스팩이 선명하게 새겨진 강인한 몸. 여성이 그처럼 근육질 몸을 가지려면 오랜 시간 강도 높은 운동을 해야 하고 다이어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식사를 조절해야 하므로 감히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팔로우한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유튜브 채널에는 앞서 묘사한 것과 유사한 몸이 넘쳐났다. 그들은 잘 훈련된 특수 요원처럼 보였다. 그리고 버터플라이 풀업라고 불리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서 턱걸이를 연속적으로 해내는 동작이나 체조 선수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머슬업(철봉에 매달려 상체를 들어 올리는 기술)을 멋지게 해낸다.

운동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그것은 건강한 몸이자 건강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것을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몸의 기능이나 체력도 꾸준하게 좋아졌고 건강한 몸을 향한 애착과 환상도 함께 커졌다. 

그런데 활동적인 사람들의 문제는, 몸을 많이 움직임으로써 다칠 확률도 커진다는 데 있다. 나는 실제로 몇몇 친구들이 부상을 입거나 수술을 받는 것을 지켜봤다. 회복과 재활이 진행되는 동안 전처럼 마음껏 움직이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습도.

그 친구들에게 '무리하지 마라', '다치지 마라', '몸을 아껴라'는 충고와 당부를 들으면서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몇 번이나 상상했다. 다치거나 기능을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몸, 병들거나 쇠약해진 내 몸을. 그러자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 우울이 밀려왔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나에게 선고를 내렸다.

'당신은 건강 집착증입니다. 땅! 땅!'

이유인즉 제스 베이커의 지적대로, 나는 건강한 몸의 범주에 뚱뚱한 몸이나 지나치게 마른 몸, 나이든 몸은 포함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는 기만이다. 건강하기만 하면 다 좋다고 하면서도 이른바 '건강한 몸'의 상을 따로 만들어놓은 것이다(사실 건강한 몸만큼 정형화된 몸도 없다).

여신 몸매나 S라인 몸매 따위가 치워진 자리에 건강한 몸을 들여놓는다고 해서 억압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우상일 뿐이다.

또 내가 화장이나 긴 머리에 앞서 체중에 대한 강박부터 버렸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기만임을 고백한다. 나는 애초에 뚱뚱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체중이 크게 불어날 일도 없었다. 또 이삼 년 전부터 몸무게를 재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거울을 보면서 몸을 체크하는 습관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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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스 베이커는 어떻게 해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뚱뚱하게 살기로 한 것일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그는 몸을 긍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셀피 많이 찍기, 팻키니(fatkini, 뚱뚱한 여성을 위한 비키니라는 뜻의 신조어) 입기, 체중 대신 증오 줄이기(lose hate to wight), 모든 몸매의 건강(HAES, Health At Every Size) 등을 제안했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셀피는 위험하지 않고 허영심의 표출이 아니고 자만심에 찬 것도 아니다. 셀피는 힘을 되찾는 수단이다. 당신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는 수단이다. 당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규정하는 수단이다.  

실제로 제스 베이커처럼 플러스 모델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대담한 노출로 몸을 드러냄으로써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꾸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한다. 쉬운 예로 뚱뚱한 여성은 비키니나 미니스커트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에 반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노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몸에 대한 긍정과 해방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내세우는 방법은 하나같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내가 대상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대상화는 어떤 식으로든 왜곡 혹은 거짓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인터넷이라는 진열대에 올려놓는 행위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인 결핍을 부추길 여지가 충분하다.

몸의 문제는 성찰의 문제

물론 제스 베이커는 포토샵이나 각도빨 없는 사진을 공유하며 자신감을 키우라고 한다. 하지만 플러스 모델을 찍은 모델컷의 일률적인 스타일(노출, 표정, 포즈, 글래머러스한 몸매)을 떠올려 보면 이는 너무 나이브한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몸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사실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몸에 관한, 분명하고도 일관된 견해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초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하게 말하면 앞으로도 자신이 없다. 

어쩌면 몸에 관한 성찰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성은, 몸에 의해 차별받는 계급에 머물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몸은 개인의 역사와 가능성과 생동감, 삶의 역동성이 내재된 장소이자 그것이 구현되는 도구이다. 

우리는 그 모든 박해와 폭력, 멸시에 맞서서 인류의 진화를 도맡았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강하고 위대한 동시에 공격받기 쉽고 폭력에 취약하며 복잡하고도 또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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