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돌보는 사람의 인생이 없어요"
오마이뉴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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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08:38
한국여성민우회는 2018년 부모돌봄 경험이 있는 여성 2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부모 돌봄을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돌봄 불평등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돌봄의 공공화·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 글은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발제문 ''딸'을 넘어 시민을 상상하다'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발표한 '2017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은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10~30대 여성들은 가족에 대한 정서적 케어(친구 같은 딸, 애교, 부모마음 헤아리기 등)를,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부모 돌봄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었다.
차별 사례를 분석하면서, 한국사회는 여성을 '시민'이 아닌 '딸'로 인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여성들이 시민이 아닌 '딸'로서 원가족에 대한 돌봄노동을 자연스럽게 요구받는 현실은 새로운 시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대비되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딸 돌봄의 시대
인터뷰이 대부분은 '어쩌다보니', '자발적 선택', '내가 여건(비혼)이 되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돌봄) 역할을 해서 자연스럽게', '며느리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맞)다고 판단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의 맥락을 살펴보면, 능동적 수용에 가까웠다.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진 과제가 아닌, 그간 원가족 안에서 요구받거나 수행해 왔던 역할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공식'이 공고한 현실에서, 높은 확률로 부모 돌봄의 역할은 '딸'의 몫이 된다. 특히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고 판단되는 비혼 '딸'일수록 1순위다.
"저도 그게 미스터리에요.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그게 오랫동안 뿌리 깊게 집안일은 돌봄 노동은 첫째가, 장녀가 해야 한다,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게 저한테 내재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와 오빠는 당연하게 제외 되니까 저랑 언니밖에는… (돌볼 사람이 없었죠) 언니가 결혼하기 전에 돌보고, 이후엔 제가 돌보고."
'돌봄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가족들이 내가 하는 돌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원가족 내에서 돌봄을 나누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도 연결된다. 오빠나 남동생에 대한 부모들의 상반된 태도는 가족이 성차별을 체감하는 대표적인 공간임을 보여준다.
"물론 제가 자식으로서 해야 될 도리이긴 한데 뭔가 제일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건 오빠한텐 뭔가 화살이 가지 않아요. 돌봄 노동이 제일 힘든 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요."
"저희 엄마가 엄청나게 저한테 일을 그만 두라고 엄청나게 압박을… 아빠가 돈을 버시니까 네가 나를 간병해라, 그런 얘기를 엄청 많이 하시는데 안 들었죠. 남동생한텐 그런 얘기 안하잖아요. 근데 저한텐 그런 얘길 하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결혼제도 안에서의 '며느리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다. 기/비혼 여성 모두 본인의 독박 돌봄에 대한 어려움과 부당함을 토로하면서도, 과거처럼 '며느리'가 부모 돌봄을 맡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못할 짓', '부당하다'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결혼제도 안에서 '며느리'가 가진 지위,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변화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며느리에게 전가 되는 것'의 부정의함에 대한 개인적 실천이다. 돌봄 전담자가 며느리에서 딸로 변화했지만, 여전히 여성이 돌봄전담자라는 점에서 성역할이 강력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도 며느리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시아버님도 모셔보고 했지만 그냥 저는 뭐 제가 그러려니 하고 모셨지만 피도 안 나눈 며느리한테 어머니를 맡긴다는 건 별로 합리적인 것 같진 않아서 그래도 여성이니까 내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실 거고…"
"며느리는 무슨 죄냐고요 내 부모도 아니고. 나야 내 부모니까 감수하고… 형제들 힘들게 사니까 '아휴 그래 말자, 그거가지고 쌈박질 해봐야 저 세상가신 부모님이 좋아할리도 없는 것'이고 그냥 내 몸 하나 희생하면 되지."
문제는 '독박'이다
중증질환이나 치매 증상 있는 부모를 돌보는 경우 24시간을 책임지는 것에서 오는 힘듦을 토로했다. 돌봄은 감정노동을 포함한 노동집약적 행위다. 인터뷰이 중 몇몇은 독박 돌봄으로 인한 '부모 살해'를 이해한다고 고백했다. 육아처럼 가족 내 한 사람이 돌봄 노동을 전담될 때,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모두 고립된다.
"개인시간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려고 하면 마음이 벌써 힘들어져요.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엄마한테 가서 뭘 해야지' 그게 딱 걸리니까 그 이후에는 개인시간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엄마랑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 때도 많아요. '이러다가 어느 날 뉴스에 날 수가 있어 엄마랑 나랑. 그게 남의 얘기가 아니야.' 100% 이해되는 게 집에서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오고 사회관계가 안 되잖아요."
국가는 가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개인화 할 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돌봄의 몫이 본인에게 넘어올까 두려워 돌봄 전담자가 힘듦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정말 사실 저는 아프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엄마의 형제들에 대해서. 자기네한테 피해 갈까봐. 경제적으로나 짐을 지게 될까봐 '그건 다 오로지 너의 몫이야.' 그런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건 누구랑 나눌 수 없는게 힘들구요. 제가 그런 걸 힘들다고 하면, 그걸 결정할 때,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옮겨야하는지, 하다못해 하여튼 뭐 하나라도 결정할 때 힘든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니까."
"아무리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나가서 운동하고 하다보면 좀 잊어버리고 생활하고 그 생활이 반복되는 거죠, 지금."
일과 돌봄, 그 사이에서
돌봄 후,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진로와 직업에서 나타났다. 돌봄으로 인해 기존의 일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돌봄 가능여부가 주요한 전제 조건으로 작동했다. 노동 시간이 길고, 가족 돌봄을 존중하지 않는 대부분의 직장 문화에서 인터뷰이들은 개인 시간을 쪼개 두 배 세 배의 일을 부담하거나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롭고 돌봄과 병행이 가능한 직종을 찾아 이동한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일, 돌봄 둘 중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하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돌봄 가능 여부로 직장을 구하거나 그에 맞춰 진로를 결정했을 때, 돌봄이 끝난 후 나는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였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등 새로운 고민 속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같은 경우는 제가 직장을 다니면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도중에 자꾸 엄마 병원에 모셔가야 되고… 너무 갑자기 이런 저런 상황들이 생기니까 지금은 그나마 눈치 덜 보는 직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면 나의 진로를 결정하려고 계획했던 게 다 망가져요. (1순위는) 내가 할 일과 엄마 돌봄. 나의 여가는 3순위, 4순위로 밀린단 말예요. 근데 저는 (돌봄이 끝났지만)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게 물론 이제 뭔가 스스로를 위해서 뭘 하는 걸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요. 뭔가 자꾸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못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나중에는 마음조차 안 먹게 되거든요."
선별복지의 문제
돌봄의 사회화·공공화라는 목표아래 2007년 첫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여성들의 돌봄 현실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장기요양제도를 신청하면, 가장 먼저 거치는 과정이 등급판정이다. 등급에 따라 지원금이 차등 적용되는데, 신체장애에 비해 인지장애(노인성 치매)는 기본적으로 등급이 낮고, 신체장애가 있어도 투병기간이 길지 않으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등급을 낮게 부여한다.
이는 제도 이용 가능한 문턱을 높이고, 실제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이러한 선별복지방식은 이용자와 그 가족으로 하여금 힘듦을 '어필'하게 만든다. 아픔을 증명해야만 더 높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등급제는 노인돌봄을 보편 복지로서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엄마는 당시에 수술은 했지만 몸은 잘 움직였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서성거리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피해망상 같은 게 굉장히 심했어요. 근데 우리 엄마는 3등급을 받았어요. 몸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1, 2등급을 주지만, 섬망 증상이 심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총 시간 수가 제한되었어요."
특히 작년 3월부터 시행된 방문요양서비스 등급별 차등 시간 적용제(3-4등급 노인들의 방문서비스 지원 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축소)에 대해 부모의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 중인 인터뷰이들 모두 입을 모아 비판했다. 혼자 둘 수 없는 경증~중증 치매, 노인성 질환(심혈관, 고관절)을 앓고 있는 부모의 경우, 기존 4시간 지원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확대가 아닌 축소 시행은 장기요양제도가 돌봄을 전담하는 가족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가족을 보조해주는 의미로 시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요양보호사가 와도 기준이 낮아져가지고 올해부터 3시간 밖에 안 해주잖아요. 근데 말이 그렇지 치매 3급이면 혼자 외출도 못하시고 혼자두면 안되는데 하루 3시간… 그나마 전에는 4시간이었는데. 이러면 돌보는 사람의 인생이 없어요. 버틸 수가 없어요. 진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어느 시간까지 가능하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 자기를 버틸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이 주어져야 되는 거죠."
경제력에 따른 돌봄의 격차
장기요양제도의 이용자 선별 및 지원시간 축소 정책으로 인한 공백은 결국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가지게 된 문제의식은, 부모 혹은 자녀의 경제력에 따라 돌봄 환경이 좌우되는 현실이었다. 인터뷰이들 간의 조건에 따른 경험적 차이가 가장 큰 지점이기도 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더 추가로 내고 해요. 한 시간에 만 원씩 더 내고 하는 거예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3시간 이상 돌봄 못 받죠. 지금은 수가가 올라가서 17만 원씩 내거든요. 그거 내기도 버거운 거죠, 사실. 거기다가 하루에 1~2만 원씩 더 낸다 하면 한 달만 해도 40~50만 원인데 부담돼서 못 하죠."
"(요양병원 입소 당시) 60만 원 냈어요. 100만 원짜리도 있었고 돈이 많으면 정말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으나 빈곤한 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게 지금의 체제인 것 같아요."
부모가 중증 질환으로 혼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다. 시설(요양원, 요양병원)을 선택하거나,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비혼여성, 가족 내에서 돌봄노동을 주로 수행해온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돌봄을 전담하게 된다. 돌봄 전담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입지는 줄어들고, 돌봄과 관련된 의견을 가족 내에서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든다.
"돌봄은 제가 전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형제자매들이 비용을 내다보니까, 눈치가 보이죠. 장기요양도 3시간 이상 받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해요. 병원비용도 그렇고. 좀 주눅드는 게 있어요. 엄마가 돈이 이만큼 들었다, 이걸 가족들한테 얘기해야 되잖아요. 나를 도와줘, 도 아닌데 엄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건데도 돈 얘기할 때는 늘 미안해요."
실제로 '노년에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인터뷰이들이 '경제력', '돈'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돌봄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노후 자금'으로만 이야기 되는 노년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노인들의 삶을 삭제하거나 과장한다. 보편적 돌봄 복지 제도 구축과 함께,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돌봄의 재구성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부모돌봄 경험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여성이 돌봄의 주담당자가 되고, 독박 돌봄을 경험하고, 안정적인 노동을 하기 어려워지고, 경제력이 없으면 돌봄이 어렵고, 현재의 돌봄 제도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돌봄이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맡겨지는 현실 속에서는 '부모 돌봄'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변화를 위한 상상이 필요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발표한 '2017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은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10~30대 여성들은 가족에 대한 정서적 케어(친구 같은 딸, 애교, 부모마음 헤아리기 등)를,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부모 돌봄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었다.
차별 사례를 분석하면서, 한국사회는 여성을 '시민'이 아닌 '딸'로 인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여성들이 시민이 아닌 '딸'로서 원가족에 대한 돌봄노동을 자연스럽게 요구받는 현실은 새로운 시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과 대비되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딸 돌봄의 시대
인터뷰이 대부분은 '어쩌다보니', '자발적 선택', '내가 여건(비혼)이 되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돌봄) 역할을 해서 자연스럽게', '며느리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맞)다고 판단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의 맥락을 살펴보면, 능동적 수용에 가까웠다.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진 과제가 아닌, 그간 원가족 안에서 요구받거나 수행해 왔던 역할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공식'이 공고한 현실에서, 높은 확률로 부모 돌봄의 역할은 '딸'의 몫이 된다. 특히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고 판단되는 비혼 '딸'일수록 1순위다.
"저도 그게 미스터리에요.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그게 오랫동안 뿌리 깊게 집안일은 돌봄 노동은 첫째가, 장녀가 해야 한다,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게 저한테 내재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와 오빠는 당연하게 제외 되니까 저랑 언니밖에는… (돌볼 사람이 없었죠) 언니가 결혼하기 전에 돌보고, 이후엔 제가 돌보고."
'돌봄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가족들이 내가 하는 돌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원가족 내에서 돌봄을 나누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도 연결된다. 오빠나 남동생에 대한 부모들의 상반된 태도는 가족이 성차별을 체감하는 대표적인 공간임을 보여준다.
"물론 제가 자식으로서 해야 될 도리이긴 한데 뭔가 제일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건 오빠한텐 뭔가 화살이 가지 않아요. 돌봄 노동이 제일 힘든 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요."
"저희 엄마가 엄청나게 저한테 일을 그만 두라고 엄청나게 압박을… 아빠가 돈을 버시니까 네가 나를 간병해라, 그런 얘기를 엄청 많이 하시는데 안 들었죠. 남동생한텐 그런 얘기 안하잖아요. 근데 저한텐 그런 얘길 하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결혼제도 안에서의 '며느리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다. 기/비혼 여성 모두 본인의 독박 돌봄에 대한 어려움과 부당함을 토로하면서도, 과거처럼 '며느리'가 부모 돌봄을 맡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못할 짓', '부당하다'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결혼제도 안에서 '며느리'가 가진 지위,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변화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여성들에게 부모 돌봄은 '며느리에게 전가 되는 것'의 부정의함에 대한 개인적 실천이다. 돌봄 전담자가 며느리에서 딸로 변화했지만, 여전히 여성이 돌봄전담자라는 점에서 성역할이 강력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도 며느리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시아버님도 모셔보고 했지만 그냥 저는 뭐 제가 그러려니 하고 모셨지만 피도 안 나눈 며느리한테 어머니를 맡긴다는 건 별로 합리적인 것 같진 않아서 그래도 여성이니까 내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실 거고…"
"며느리는 무슨 죄냐고요 내 부모도 아니고. 나야 내 부모니까 감수하고… 형제들 힘들게 사니까 '아휴 그래 말자, 그거가지고 쌈박질 해봐야 저 세상가신 부모님이 좋아할리도 없는 것'이고 그냥 내 몸 하나 희생하면 되지."
문제는 '독박'이다
중증질환이나 치매 증상 있는 부모를 돌보는 경우 24시간을 책임지는 것에서 오는 힘듦을 토로했다. 돌봄은 감정노동을 포함한 노동집약적 행위다. 인터뷰이 중 몇몇은 독박 돌봄으로 인한 '부모 살해'를 이해한다고 고백했다. 육아처럼 가족 내 한 사람이 돌봄 노동을 전담될 때,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모두 고립된다.
"개인시간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려고 하면 마음이 벌써 힘들어져요.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엄마한테 가서 뭘 해야지' 그게 딱 걸리니까 그 이후에는 개인시간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엄마랑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 때도 많아요. '이러다가 어느 날 뉴스에 날 수가 있어 엄마랑 나랑. 그게 남의 얘기가 아니야.' 100% 이해되는 게 집에서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오고 사회관계가 안 되잖아요."
국가는 가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개인화 할 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돌봄의 몫이 본인에게 넘어올까 두려워 돌봄 전담자가 힘듦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정말 사실 저는 아프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엄마의 형제들에 대해서. 자기네한테 피해 갈까봐. 경제적으로나 짐을 지게 될까봐 '그건 다 오로지 너의 몫이야.' 그런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건 누구랑 나눌 수 없는게 힘들구요. 제가 그런 걸 힘들다고 하면, 그걸 결정할 때,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옮겨야하는지, 하다못해 하여튼 뭐 하나라도 결정할 때 힘든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니까."
"아무리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나가서 운동하고 하다보면 좀 잊어버리고 생활하고 그 생활이 반복되는 거죠, 지금."
일과 돌봄, 그 사이에서
돌봄 후,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진로와 직업에서 나타났다. 돌봄으로 인해 기존의 일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돌봄 가능여부가 주요한 전제 조건으로 작동했다. 노동 시간이 길고, 가족 돌봄을 존중하지 않는 대부분의 직장 문화에서 인터뷰이들은 개인 시간을 쪼개 두 배 세 배의 일을 부담하거나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롭고 돌봄과 병행이 가능한 직종을 찾아 이동한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일, 돌봄 둘 중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하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돌봄 가능 여부로 직장을 구하거나 그에 맞춰 진로를 결정했을 때, 돌봄이 끝난 후 나는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였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등 새로운 고민 속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같은 경우는 제가 직장을 다니면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도중에 자꾸 엄마 병원에 모셔가야 되고… 너무 갑자기 이런 저런 상황들이 생기니까 지금은 그나마 눈치 덜 보는 직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면 나의 진로를 결정하려고 계획했던 게 다 망가져요. (1순위는) 내가 할 일과 엄마 돌봄. 나의 여가는 3순위, 4순위로 밀린단 말예요. 근데 저는 (돌봄이 끝났지만)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게 물론 이제 뭔가 스스로를 위해서 뭘 하는 걸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요. 뭔가 자꾸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못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나중에는 마음조차 안 먹게 되거든요."
선별복지의 문제
돌봄의 사회화·공공화라는 목표아래 2007년 첫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여성들의 돌봄 현실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장기요양제도를 신청하면, 가장 먼저 거치는 과정이 등급판정이다. 등급에 따라 지원금이 차등 적용되는데, 신체장애에 비해 인지장애(노인성 치매)는 기본적으로 등급이 낮고, 신체장애가 있어도 투병기간이 길지 않으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등급을 낮게 부여한다.
이는 제도 이용 가능한 문턱을 높이고, 실제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이러한 선별복지방식은 이용자와 그 가족으로 하여금 힘듦을 '어필'하게 만든다. 아픔을 증명해야만 더 높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등급제는 노인돌봄을 보편 복지로서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엄마는 당시에 수술은 했지만 몸은 잘 움직였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서성거리고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피해망상 같은 게 굉장히 심했어요. 근데 우리 엄마는 3등급을 받았어요. 몸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1, 2등급을 주지만, 섬망 증상이 심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총 시간 수가 제한되었어요."
특히 작년 3월부터 시행된 방문요양서비스 등급별 차등 시간 적용제(3-4등급 노인들의 방문서비스 지원 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축소)에 대해 부모의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 중인 인터뷰이들 모두 입을 모아 비판했다. 혼자 둘 수 없는 경증~중증 치매, 노인성 질환(심혈관, 고관절)을 앓고 있는 부모의 경우, 기존 4시간 지원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확대가 아닌 축소 시행은 장기요양제도가 돌봄을 전담하는 가족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가족을 보조해주는 의미로 시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요양보호사가 와도 기준이 낮아져가지고 올해부터 3시간 밖에 안 해주잖아요. 근데 말이 그렇지 치매 3급이면 혼자 외출도 못하시고 혼자두면 안되는데 하루 3시간… 그나마 전에는 4시간이었는데. 이러면 돌보는 사람의 인생이 없어요. 버틸 수가 없어요. 진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어느 시간까지 가능하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 자기를 버틸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이 주어져야 되는 거죠."
경제력에 따른 돌봄의 격차
장기요양제도의 이용자 선별 및 지원시간 축소 정책으로 인한 공백은 결국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가지게 된 문제의식은, 부모 혹은 자녀의 경제력에 따라 돌봄 환경이 좌우되는 현실이었다. 인터뷰이들 간의 조건에 따른 경험적 차이가 가장 큰 지점이기도 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더 추가로 내고 해요. 한 시간에 만 원씩 더 내고 하는 거예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3시간 이상 돌봄 못 받죠. 지금은 수가가 올라가서 17만 원씩 내거든요. 그거 내기도 버거운 거죠, 사실. 거기다가 하루에 1~2만 원씩 더 낸다 하면 한 달만 해도 40~50만 원인데 부담돼서 못 하죠."
"(요양병원 입소 당시) 60만 원 냈어요. 100만 원짜리도 있었고 돈이 많으면 정말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으나 빈곤한 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게 지금의 체제인 것 같아요."
부모가 중증 질환으로 혼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다. 시설(요양원, 요양병원)을 선택하거나,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비혼여성, 가족 내에서 돌봄노동을 주로 수행해온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돌봄을 전담하게 된다. 돌봄 전담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입지는 줄어들고, 돌봄과 관련된 의견을 가족 내에서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든다.
"돌봄은 제가 전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형제자매들이 비용을 내다보니까, 눈치가 보이죠. 장기요양도 3시간 이상 받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해요. 병원비용도 그렇고. 좀 주눅드는 게 있어요. 엄마가 돈이 이만큼 들었다, 이걸 가족들한테 얘기해야 되잖아요. 나를 도와줘, 도 아닌데 엄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건데도 돈 얘기할 때는 늘 미안해요."
실제로 '노년에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인터뷰이들이 '경제력', '돈'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돌봄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노후 자금'으로만 이야기 되는 노년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노인들의 삶을 삭제하거나 과장한다. 보편적 돌봄 복지 제도 구축과 함께,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돌봄의 재구성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부모돌봄 경험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여성이 돌봄의 주담당자가 되고, 독박 돌봄을 경험하고, 안정적인 노동을 하기 어려워지고, 경제력이 없으면 돌봄이 어렵고, 현재의 돌봄 제도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돌봄이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맡겨지는 현실 속에서는 '부모 돌봄'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변화를 위한 상상이 필요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