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뭔데?", 육아휴직 원했지만 결말은...
오마이뉴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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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21:54
"모성보호 정책이요? 그건 대기업에나 해당하는 얘기죠. 결혼해서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얼마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겠습니까?"
평등의전화 상담실을 찾은 A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A씨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거부 당하고 퇴사까지 하고 말았다.
육아를 이유로 회사에 책잡히는 게 싫어 많은 업무를 남들보다 더 열심히, 남들이 꺼리는 일도 나서서 해온 A씨였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어린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어렵사리 육아휴직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A씨는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무슨 산모야?"
평소에도 어쩌다 아이 때문에 업무 조정을 하려면 쏟아지는 눈총과 삿대질, 갖은 모욕을 견뎌야만 했다. 아이가 있는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버티다 못해 A씨는 회사를 쫓기듯 나왔다. 그리고 노동부를 찾아가 육아휴직 거부에 대해 신고했다. 결과는 불인정이었다. A씨의 회사에서는 관례상 휴가와 휴직 사용 시 신청서를 서면 제출하지 않고 구두로 휴가·휴직을 사용하기 때문에 육아휴직 역시 구두로 신청했다.
노동부는 사측이 A씨의 육아휴직 신청 사실을 진술에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 신청서를 서면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아휴직 신청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대기업은 모·부성권 제도 이용이 자유로울까?
대기업 역시 녹록지 않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로 정하고 있는 배우자출산휴가는 출산한 배우자를 둔 남성노동자에게 유급휴가 3일을 부여하는 제도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B씨는 배우자출산휴가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사내 분위기 때문에 휴가 사용이 어려워 상담실을 찾았다. B씨의 회사에서는 배우자출산휴가를 암묵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사용을 한다고 해도 개인연차를 차감하는 형식이다. 눈치 보며 결재조차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5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은 실효성이 없다고 호소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안산/수원여성노동자회·평등의전화 상담실에 접수된 육아휴직·출산휴가 관련 상담은 185건으로, 전체 상담 비율의 34%를 차지한다. 개편된 제도 이용에 대한 단순문의부터 불이익을 경험하고 상담실을 찾아오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단순 문의라 할지라도 육아휴직 사용 후 혹은 사용 전 퇴사를 염두에 두고 실업급여 수급 여부까지 문의해 오는 내담자들이 많다. 제도의 개편을 통해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지는 늘어났으나, 육아휴직 종료 후 복직이 어렵거나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부여하지 않아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사회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고용평등·일가정양립 실현에 대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책임도 존재한다. 여전히 출산휴가·육아휴직 불이익에 대한 신고 및 처벌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한 신고시스템 마련과 모·부성권의 침해가 일어나는 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현장관리감독이 필요하며 합리적 감수성을 지닌 근로감독관이 사건 판단을 하여 위법한 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뤄져야만 한다.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국가에서는 저출산(저출생) 국면에 부딪혀 국민들에게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낳고 나서 우리에게 펼쳐지는 현실은 고용단절과 독박육아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화두가 돼 정부도 이의 향상에 앞장설 것을 표명하고 있는 지금, 국가는 출생률과 같은 수치만을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실제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이들의 일과 삶의 실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고 사회구조적·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
아이를 낳아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가 밑바탕이 되어야 일·생활균형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 안산/수원여성노동자회·평등의전화는 모집채용 시 성차별, 근로조건, 직장 내 성희롱, 모·부성권(임신출산불이익) 등 여성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담: 031-494-4362(안산) 031-246-2080(수원)/ 전국공통번호: 1670-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