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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 목수, '아저씨는 뭐하시냐'고 꼭 물어보네요"

"난 여자 목수, '아저씨는 뭐하시냐'고 꼭 물어보네요"

오마이뉴스 0 5,606

#1.
작년 여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맹·산별조직 및 지역본부 대표자로 구성된 의결기구)를 참관하던 날이었다. 전날 밤, 주요 회의· 발언대 등에서 남자가 없어지면 남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는 그림을 봤던 터라 새삼 궁금해졌다.


상상 속에서 회의석 남성들을 없애고 나니, 40명 넘는 중집위원 중 딱 네 명이 남았다. 문득 16개 지역본부장 중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역시 없단다. 16개 지역본부가 20년 동안 몇 번의 선거를 하며 몇 명의 후보가 나왔을진대,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2.
올 6월 지방선거, 민주당에서 낸 16개 광역시도 단체장 후보지도는 '정치의 대표성'을 무색하게 했다. 지도 속 얼굴 16명 모두 중년 남성이었다. 투표권 가진 이들의 성별, 나이는 그보다 훨씬 다양할 터였다. 온라인에서 '아재정치'라 비판받기도 했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민주노총도 2017년 말 위원장 포함 16개 지역본부장 동시 선거를 치렀는데, 지도에 얼굴 넣고 보면 민주당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위원장 4개 선본, 16개 지역본부 20개 선본에서 여성 '장'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80만 명 중 25만 명이 여성(2018년 2월 기준)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6월 30일 집회에도 여성들이 많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민주노총은 정규직·중년·남성 노동자로 대표되고 있다.


보수언론에서 조장하는 이미지도 있지만, 실제 '장'이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그들인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7월 19, 20일에 열린 '민주노총 여성간부 수련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여성 간부·활동가
우리 스스로도 '저기도 여자가 있어?'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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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주최한 '2018 민주노총 여성 간부·활동가 수련회'에는 자동차, 건설현장, 학교, 빵집, 톨게이트, 휴게소, 공공기관 등 업종·지역, 정규직·비정규직을 불문하고 200여명의 여성조합원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이번 수련회는 2017년 100명 규모에 이어 열린 것으로, △민주노총 내 여성 활동가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여성적 연대를 확대·강화할 것, △여성노동자를 대변하는 투쟁을 건설하고, 그 투쟁을 위한 아이디어와 실천의 근원을 여성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찾는 것, △노동조합이 여성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여성노동자의 경험과 토론 속에서 찾는 것, △성평등한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해 성폭력과 성차별에 맞선 페미니즘 활동의 구체적인 요구와 실천 계획을 만들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여성노동자 7분 스피치, 민주노총 여성대표성 강화를 위한 조별 토론, 미투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토론 등이 프로그램으로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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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강당을 가득 채운 2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보고 놀랐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끼를 그렇게 세련된 언니가 입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60, 70대 여성들이 누구보다 멋스럽게 빨간 조끼를 입고 있기도 했다. 등산복 일색 조끼패션이 아니라, 노조 조끼 패션쇼를 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해 일을 시작했을 여성들은 물론, 몇 십 년을 직접 땀 흘리고 노동하며 몇 명의 삶은 책임져왔을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대회장에 모인 여럿이 수근거렸다. 본인도 누군가에겐 그리 보였을 테지만, '대박, 저기도 여자 있었어?'라고. 집단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들이, 그들만 200명 모이고 보니 그제서야 '제대로' 보였다.

"집에 아저씨는 뭐해요?",

"이건 여자가 못할 일인데"
여전히 성별에 따른 직업차별 확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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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7분 스피치'는 자신의 일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첫 스피치에 나선 이는 2017년 핫한 노조 중 하나인 파리바게트노조 임종린 지회장이었다. 그녀는 "대외적으로는 수당 5만원 때문에 노조를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내부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여성승진 차별문제도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10년 넘게 파리바게트를 다녔고, 어디서나 일 잘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중간관리자까지 올라갔을 때, 이유 없이 나를 내리고 나보다 연차 낮은 남성을 앉혔다"며 노조를 만든 과정과 경험을 나누었다.


두 번째 스피치는 광명성애병원 간호사 박수자 조합원이었다. 그녀가 속한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공짜노동, 태움, 속임인증, 병원 내 비정규직을 없애는 4OUT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는 "병원노동자 70%가 여성이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간부 구성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들이 적극 나서고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스피치로 나선 이는 25년째 노조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올 연말에 정년퇴직 한다는 휴게소 노동자 백오호 조합원이었다. 그녀는 "살다 보면 누군가 꼭 나서는 사람이 있다. 그게 우리 같다"며 노동조합을 처음 만든 때를 떠올렸다. "휴게소에는 여성들이 훨씬 많다. 사측은 이런 곳에 용역깡패를 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화장실 갈 때도 두 명 이상 다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를 지켜왔다"며 경험을 나누었다. 그녀는 "만들기보다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게 노조다. 세상을 바꿔가는 여성 활동가로 자리매김 했으면 한다"는 말로 스피치를 마무했는데, 25년 세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마지막 스피치는 작년부터 목수 일을 시작한 건설노조 중서부건설지부 신연옥 조합원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처음 목수 일을 시작했는데, '여자목수 처음 본다, 집에 아저씨 뭐하시냐, 아저씨는 돈 많이 벌어줘서 좋겠다'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현장에서 화장실이 너무 멀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회사 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다.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고, 활동적이고,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지부에는 20명 넘는 여성 목수들이 있고, 여성위를 만들려고 교육·실무팀 등 구성하고 있다. 건설노동자로 당당히, 현장에서 여성으로 일하고 싶다. 많이 응원해달라"고 덧붙여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0만 민주노총, 여성이 만들자"
여성할당제를 넘어 여성대표성 강화로 민주노총 혁신하기


우리 사회에서 여성 대표성은 여전히 취약하다. 여성할당제는 여성이 대표성을 갖고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을 때까지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다. 공직선거법에서는 비례후보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해야 하며, 여성후보 순위를 홀수로 두게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심상정, 이정희, 은수미 등 여성정치인들의 진출이 가능했다. 또한 양성평등기본법 21조 정책결정 과정참여에 따르면 특정성별이 위원회 성별의 6/10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어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위원회에 여성을 배치할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에게도 '여성할당제'는 20년 된 과제다. 민주노총은 1997년 여성위원회를 설치했고, 2000년 1월에 '여성할당제 보고서'를 제출, 그해 10월 중앙위원회에 관련 규약안을 제출했다. 현재 민주노총은 30%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때문에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후보조에 반드시 여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대의원 등 모든 대표직에 적용된다.

여성할당제라는 적극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내 여성대표성은 현저히 낮은 상태다. 참가자들은 조별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여성할당제가 아직 부족하고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여성간부 비율이 너무 적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낮고, 노조 활동 하는 여성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다"(민주일반연맹), "할당제가 여성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여성조합원들과의 소통창구로는 부족하다. 대의원은 의견 모으고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데, 여성은 인원수 할당이니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듣고 누구를 대표할지 막연하다. 그런데 조직 전체적으로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 같다"(금속노조) 등 아쉬움들이 나왔다.


현재 할당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제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 여성할당제 시행규정 제6조 '가맹·산하 조직은 조직내 여성할당제 시행을 위한 계획과 이행현황을 매년 12월 1일까지 민주노총으로 보고하여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한다'는 부분이었다. 참석자들은 이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올해부터라도 서로 점검·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았다. 타임오프제가 대표적인데, 사업장에서 타임오프는 대부분 남성 간부들이 쓰고 있는 현실이며, 여성들은 쓰더라도 매우 제한적·부분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여성간부들의 활동시간을 보장해야 실질적 활동도 확장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성조합원이 늘고 있고, 그만큼 발전가능성을 봐야한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가 활동해야만 여성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며 마음을 다지는 참석자도 있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은 "지부별 성평등 위원회 깃발을 만들고, 소식지 한 면은 전체 이슈, 한 면은 여성 이슈를 넣어서 배포해보고 싶다. 배포하는 날 성평등위 깃발 들고 공개 방문하면서 우리 존재를 보여주고 싶다"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수 조직에서 여성위원회 건설, 여성활동가 모임 구성 등 계획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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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페미니즘이다

수련회를 마무리하며 피켓에 각자의 구호를 적었다. '여성노동자여 단결하자! 일상을 깨고 만나서 연대하자', '우리 노조도 내년에는 여성할당제 도입하자', '떠들자, 시끄럽게! 말하자, 여성의 언어로! 싸우자, 여성의 연대로!', '더더더 예민해지자' 등 여성노동자의 말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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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별 게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여자도 사람이라는 급진적인 생각"일 뿐이다. 여성운동가, 페미니스트가 따로 있지 않다. 여성으로서 사람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두가 페미니스트다. 여성들에게 노조는 '여성노동자 인간선언'이다. 여성노동자인 나를 드러내고, 말하고, 싸우는 것. 그것을 함께할 수 있는 조직, 노동조합. 그래서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이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20일 밤, 파업 중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조 여성조합원들의 총파업 선언문을 읽었다. 그들의 말이 우리가 이틀 내내 나눈 말 같았다. 그 성명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그들이 가리고 숨겨도 무수히 많은 투쟁의 역사 속에는 소수자, 그리고 여성이 있었다. 2018년, 노동조합은 싸우고 있다. 이 자랑스런 대오 중 하나의 주체로서 나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진짜 노동자다! 행동하는 여성이 진짜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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