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성희롱 피해자는 말할 수 있다, "일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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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성희롱이 법제화된 지 20년, 직장내 성희롱 발생 후 처리과정에서의 2차 피해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희롱 2차 피해는 피해자가 성희롱을 겪은 후 이를 드러내고 해결하는 전 과정에 걸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모든 불이익 또는 정신적 피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피해자 유발론(네가 꼬리친 거 아니냐?), 꽃뱀 낙인(합의금 등 다른 목적이 있을 거다), 예민한 피해자(너무 예민하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폭언 또는 폭행, 업무상 불이익, 해고 등이 바로 그 2차 피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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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 평등의전화(전국 10곳) 상담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2차 피해가 2015년 34%, 2016년 42.5%, 2017년 63.2%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2차 피해의 심각성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이를 잘 보여주듯 2017년 서울여성노동자회가 평등의전화 성희롱 피해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계속 재직 중인 피해자는 28%로, 피해자의 72%가 퇴사했다(6개월 이내 퇴사 82%. 1개월 57%, 3개월 11%, 6개월 14%).
 
게다가 성희롱 피해자들은 성희롱 피해로 인해 분노, 수치심, 두려움, 우울증, 무력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겪고 수면장애, 두통, 체중감소 및 폭식 등과 같은 신체 반응 뿐 아니라 근로의욕 저하, 자신감 저하, 대인기피, 집중력 저하 등 행동 및 인지 반응을 보이며 직장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직장내 성희롱은 여성들이 노동지속을 저해함으로써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다. 

최근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및일가정양립에관한법률(아래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자 불이익 조치 금지와 성희롱 피해자 보호조치에 관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눈에 띄는 점은 사업주가 피해자 보호조치로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성희롱 피해자는 사업주로부터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을까?
 
직장내 성희롱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피해자 보호에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2015년 여성가족부가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내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행위자의 성별은 남성이 92.6%, 피해자의 성별은 여성이 94.4%이고, 행위자의 연령은 40대 이상이 73.8%(50대 이상 42.7%, 40대 31.1%), 피해자의 연령은 76.0%가 40대 이하였다(20대 40.0%, 30대 36.0%).**
 
이미 모두가 아는 상식처럼 직장내 성희롱은 직장 안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여성들이 주요한 피해자가 된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거나 비정규직인 경우가 바로 그 예다. 직장 안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이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근무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을 얻어낼 수 있을까? 그 과정이 지난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해낼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을 지킬 권리, 작업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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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업주가 성희롱 발생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조치를 취할 경우 피해자는 피해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도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을 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성희롱 피해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법적으로 근로자의 작업거부권을 두고 있는 독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은 '일반평등대우법' 제14조에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작업거부권을 명시하고 있다. 직장 안에서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당한 경우 사용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조치를 취할 경우 노동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업무를 정지할 수 있는 작업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법 체계가 다른 한국에서 독일의 작업거부권을 그냥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의 성희롱 방지의무 및 예방교육 실시의무 등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담기 어렵다. 

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안전의 문제가 아닌 현실

그렇다고 피해자를 보호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희롱 2차 피해의 심각성에서 드러났듯이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2018.2.9)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전부개정안은 법의 보호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발주자·도급인 등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 주체를 확대하며,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수준을 상향하고 제재수단을 다양화해 법의 실효성을 제고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 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노동자의 반인 여성,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성희롱을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의 문제로 보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산업안전과 직장내 성희롱이 도대체 무슨 상관있느냐'며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 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산재보험법 시행령의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은 직장 내 성희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013.7.1.시행).
 
고객에 의한 폭언·폭행 또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으로부터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또는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한 적응장애 또는 우울병 에피소드". 2016.3.28.시행). 게다가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은 업무상 질병의 조사과정에서 '심리적 외상성 사건'에 대한 조사를 추가했고, 심리적 외상성 사건의 일종으로 성폭력·성희롱, 폭언, 폭력 등을 명시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의 위험요인으로 파악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모순적인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위험 요인에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제4장 재해·건강장해 예방' 조항에는 사업주가 예방해야 할 작업환경의 유해와 위험이 주로 물리적 사고위험과 화학물질, 소음, 공해에 의한 위험과 같은 물질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으로 설정되어 있다('기계, 기구, 그 밖의 설비에 의한 위험', '폭발성, 발화성 및 인화성 물질 등에 의한 위험', '전기, 열, 그 밖의 에너지에 의한 위험 예방을 위한 조치', '화학약품 및 소음에 의한 조치', '적정한 환기와 청결 유지 등'). 
 
산업안전에 성희롱으로 인한 근로환경 악화 명시

물론 개정안은 고무적으로 '고객 등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 장해 예방조치'를 두고 있어 감정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한 부분은 크게 진일보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의 폭언·폭언 등만인 아니라 직장 안에서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되어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환경에서 일하지 못하고 있다. 전산업에 걸쳐 여성들의 직장내 성희롱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교집합의 노동조건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이 간과되어 '산업안전'의 테두리 안에 성희롱으로 인한 근로 환경 악화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여성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산업안전의 개념이 여성의 노동 경험에 기반해 확장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벌칙조항을 둔 예방조치의 의무로서 성희롱을 규정함으로써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성희롱이 명시될 때 해당 법에 규정된 노동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성희롱 피해자도 사용할 수 있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작업중지권 사용과 관련해 '급박한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그 판단은 누가하며, 대피 후 작업재개의 조건과 판단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한 비판이 크다.
 
그러나 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재해 예방조항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급박한 위험'을 논할 조건조차 되지 않는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성희롱으로부터 인격침해와 재해를 겪기 전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 작업중지권은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에 직장내 성희롱을 노동환경 악화의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성희롱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재해의 위험요인이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이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는 모순된 상황에 있다. 만약 직장내 성희롱을 작업환경의 위험요인으로 보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시행하게 된다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인 도구나 위험물질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규제를 하는 것처럼 성희롱 예방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바로 적극적인 기업주의 성희롱 예방 의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사업주의 직장내 성희롱 예방 책임을 강화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성희롱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이 직장내 성희롱을 고용차별로 보고 고용환경을 저해하는 노동권과 건강권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일례로 코네티컷 주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교육으로, 직장내폭력예방교육이란 이름으로 산업재해와 직장내 성희롱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이제, 직장내 성희롱의 문제를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으로 접근할 때이다. 

*신상아(2017), "직장내 성희롱이 피해자 심리정서에 미치는 영향 및 불이익 조치 실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
**여성가족부(2015),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박귀천(2011). "성희롱피해자의 보호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독일의 작업거부권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이화젠더법학』, 제3권 제1호,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최윤정(2003), 『'산업재해'로서의 직장내 성희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논문
*****안정은, 2016, "직장내 성희롱 예방 체계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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