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꺼이 '버르장머리 없는'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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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얼마 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 없이 혼자 친정에 갔다. 사위가 오면 집에서 밥그릇 하나도 설거지통에 갖다 놓지 못하게 하는 아빠는, 혼자 친정에 온 게 영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입만 열면 싸우는 부녀 사이라 나도 그런 아빠를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참다 못해 내뱉듯이 불쑥 물었다.


"너는 왜 아기를 안 갖니?"


우리는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결혼 전부터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아빠는 들을 때마다 '쟤가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셨다.


"아이를 낳아야 사람 사는 것처럼 살지!"
"난 지금도 좋아."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
"왜 안 돼? 나는 내가 행복한 대로 살고 싶어."


내 말에 아빠가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딸이 행복을 좇으며 산다는 말이 아빠에게는 왜 한숨을 쉴 만한 일인 걸까?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하다는 말,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원하는 길을 가겠다는 말은 아빠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빠와 내가 살아온 배경과 각자의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빠는 딸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랐을까? 일도 열심히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아 키우길 바랐을까? 그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아기가 아니라 일을 포기하기를 바랐을까?

 

결혼 후에 오는 것들


나는 지금껏 나의 꿈을 이루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때로는 어떤 한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결혼 자체가 내 일상을 크게 뒤바꿔놓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에도 각자의 일상을 평소처럼 이어갔다. 그러나 주변에서 듣는 질문과 사회가 떠미는 나의 역할이 달라졌다.


"남편 아침밥은 해줘? 왜 이렇게 남편 살이 빠졌어?"
"시부모님 첫 생신상은 며느리가 차리는 거라잖아."
"시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는 드리고?"
"유부녀가 명절에 여행을 간다고?"


나는 갑자기 내가 남편의 부속품이 된 듯했다. 친정집은 늘 두 번째로 미루고 시댁 차례와 제사를 늘 우선으로 해야 하고, 며느리이기 때문에 시댁에 안부 연락을 드려야 한다. 남편 의 밥을 챙겨 먹이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며, 시댁 식구들을 '아가씨'와 '도련님'이라고 존칭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불평등하다는 말을 꺼내놓으면 '요즘 여자들은 배려심이 부족하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남자들을 피곤하게 한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사랑해서 함께 살기 위해 결혼했는데, 왜 세상은 갑자기 나에게 수많은 의무를 떠미는 걸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결혼에 대한 인식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고, 비혼이 늘어나는 동시에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으로 '고스펙 여성'을 지목한 바 있다. 휴학, 연수, 자격층 취득 등 '불필요한 스펙쌓기'에 불이익을 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게 만들자는 요지였다.

 

당연히 비판이 이어졌다. 공부하지 말고 결혼하라고 등 떠밀거나 출산 연령대의 여성 분포도를 만들 게 아니라,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나 아기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이유를 살펴봐야 할 것이 아닌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이유는 결혼 후 달라지는 성 역할 때문이다. '여성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을 돌봐야 하고, 시댁에 잘해야 하고, 아기를 낳으면 주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사고 안에서 많은 남편들은 여성의 일을 옆에서 '돕는' 역할을 맡는다.

 

요즘 여성들은 결혼하면 좋은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각각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슈퍼우먼이 되지 않는 이상 '모성애가 부족하다'거나 '가정적이지 않은' 여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쉽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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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니까 좋아?


사랑해서 한 것이니까, 우리 두 사람만 생각하면 결혼은 물론 좋은 일이었다. 당연히 어려운 점도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끼리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고, 살아가기 위해 나눠야 하는 대화는 아주 많았고, 우린 기꺼이 그 갈등과 화합의 과정을 감내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한국 사회가 결혼한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얼마나 당연하게 정의내리고 부여하고 있는지, 지금 알고 있는 걸 미리 겪었더라면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결혼이라는 낡은 제도는 내 삶을 납득할 수 없는 전통의 굴레에 자꾸만 가두려고 했다.


나는 나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부딪치고 싶지 않다. 남편과 내가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수없이 주장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을 표현했을 때 유난이라는 시선을 받고 싶지 않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일 안하면 늙은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는 거냐'는, 시아버지와 남편과 그의 형제가 집안일을 돕는 것에 대한 가능성 자체가 빠져 있는 한심한 공격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우리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납득할 수 없는 역할을 받아들여 나의 삶을 퇴화시킬 수는 없다. '결혼하면 아기를 낳아야' 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셔야' 하고, '남편을 내조해야' 하며, '유부녀가 외박이 웬 말'이냐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따라 산다면 결국 원하지 않는 의무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는 그가 '가장으로서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길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삶의 형태는 이렇게 다양해지고 있는데, 결혼 후 일관된 변화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혼에 대한 불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결혼하고 나서 보니 성 역할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은 사방에 지뢰처럼 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유교 사상과 가부장제도와 남존여비의 잔재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살 수는 없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터에는 아예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나는 결혼 후에 종종 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결혼을 통해 행복해질 권리도 가지고 있다. 이왕 선택한 길이라면, 결혼이 조금 더 자유롭고 평등한 약속이 될 수 있도록 한 걸음이라도 내딛고 싶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결혼과 패키지로 따라온 불편과 불평등을 평생 감수하지 않고 내 식대로 살기로 결정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제로 한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그게 버르장머리 없는 며느리, 참하지 않은 아내가 되는 길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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