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교실에서 안녕하지 못하다

오마이뉴스 0 3,061

우신고, 부안여고... 언급하지 못한 학교들, 그리고 아직 공론화되지조차 못한 학교들까지, '교실 내 여성혐오'는 더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은 '여성'이라는 젠더권력 속 약자성과 더불어 '학생'이라는 약자성을 이중으로 경험합니다. 고함20은 반복되는 학교 안의 젠더폭력 문제를 정리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교실 내 여성혐오] 기획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여성' '학생'이어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이야기입니다. -기자 말

 

학교에는 다양한 폭력이 존재한다. 관계를 이루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폭력의 양상은 달라진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일련의 교실 내 여성혐오 고발들은 유독 한 가지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양상을 잘 보여주었다. '남교사-여학생'의 관계다.

 

'젠더' 권력을 가진 '교사'

 

여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72명의 여학생이 두 명의 남교사에게서 성추행을 당했고, 경남 창원의 한 여고에서는 남교사가 교실에 몰카를 설치했다. 우신고와 부안여고에서는 남교사의 성추행 문제 등이 터져나왔다. 관계의 양상이 조금 정리되는가? 많은 경우, 남교사는 가해자고 여학생은 피해자였다(우신고의 경우 남학생 피해자도 있었다. -편집자주)

 

여성혐오적 발언도 '일상'이었다.

 

'남자는 공부 못하면 막노동이라도 하지만, 여자는 공부 못하면 몸을 팔게 될 수도 있다'

 

교사 몰카 설치와 함께 교장 '여혐 훈화' 문제가 불거졌던 창원 N여고 학생이 트위터에 옮긴 발언 내용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런 말을 들어왔다고 했다.

 

여학생을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로만 상정하고 여성의 능력을 비하하는 발언들은 '여전히' 교사들(특히 중년의 남성 교사)에 의해 발화된다. 2017년 한국의 많은 교사들은 여전히 여성을 남성 서사 속의 조연으로 인식한다. 여학생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쥐여준 권한은 교묘하게 활용됐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몰카 논란 당사자인 N여고 교사는 "담임이 바뀌면 생활기록부 작성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민원을 더 안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이 교사-학생 간의 수직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걸 인지한 발언이다.

 

반면 피해자인 학생들은 학교라는 사회에서 자신의 약자성을 일상 속에서 느끼고 두려워한다. 사건을 공론화한 여학생들은 구체적 협박을 받기 전부터 자신의 증언이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했다고 입 모아 말했다.

 

"공론화를 포기했었다(트위터 'N여자고등학교' 계정)",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내서여고 남교사 몰카 사건 최초 고발자 인터뷰')" 식의 반응은 그것을 증명한다.

 

비대칭적 구도 속에서 가해자는 이중으로 강해지고 피해자는 이중으로 약해진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억압 속에서 많은 여학생이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이다. 이는 '미친 남교사 한 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받는 여학생 다수'의 문제다.


결국, 문제는 젠더다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교실 내 여성혐오가 고발될 때마다 "왜 여혐 프레임에 갇혀서 문제를 바라보느냐?", "미친 선생 한두 명이 잘못한 것뿐이다", "교권의 횡포일 뿐, 여성혐오는 아니다"라는 반응들이 나온다. '일부' 남교사가 잘못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 혹은 "제자를 아끼는 마음에 그랬을 건데 야박하다"는 망언은 보편적인 '여성혐오'를 인정하려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실 내 여성혐오 문제의 핵심이 '젠더'라는 것은 여교사-남학생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교사의 수업 중 집단으로 자위 행위를 했다. 이외에도 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남학생들의 몰카 범죄와 음담패설 등이 거론된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70퍼센트 이상의 여교사들이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으며, 그들은 여교사가 항상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2016년 6월 발표 자료).

 

여교사는 남교사와는 달리 '교사'의 권위보다 '여성'으로서의 약자성을 훨씬 크게 경험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젠더 권력은 강력하다. '여성혐오'가 교실 내 여성혐오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면, 왜 많은 경우 여교사는 '피해자'이고 남교사는 '가해자'인가? 교실 내 여성혐오 문제에서 교사-학생의 관계를 따지는 것과 더불어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젠더'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 교실 내 여성혐오는 해결될 수 없다.

 

너는 나다

 

인터뷰 과정에서 한 여학생은 "공론화 이후, 내가 (가해자) 선생님을 괴롭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애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들의 고발이 더 이상 지워지지 않기를, 그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맥락을 따져보면 선생님의 의도는 여성혐오가 아니었다", "(남교사의) 교권의 횡포일 뿐이다", "미친 선생 한두 명의 문제다"라는 말은 피해자들을 자기검열과 2차가해의 늪으로 더 끌어당기고, 문제를 축소시키며 가해자 중심적인 시각을 재생산한다.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여성혐오를 고발한 여학생들, 당신들의 용기에 '존경스럽다'고 전하고 싶다. 이 기사를 쓰면서, 몇 년 전 무력하게 교실에 앉아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고 애써 되뇌던 여학생이 떠올랐다. 바로 나였다. 그래서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용기를 내준 당신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연대'를 표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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