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티엔 '여혐 노래'도 '클럽 성추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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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춤이 있는 장소는, 누군가에겐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다. 정적 공간인 일상에서 벗어나 동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그 순간은 '일상탈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음악과 춤은 남성과 여성 모두 앞에서 평등할까? 공연장, 뮤직페스티벌, 클럽과 같은 공간은 남성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장소일 수 있지만, 여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위험으로 다가가곤 한다. '무언의 약속' 아래에서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암묵적인 전제 속에서 여성들은 음악을 온전히 전유할 수 없다.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마름,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뽐내고자 하는 여성 뮤지션들의 목마름이 모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오는 10월 8일 여의도 물빛무대에서 개최될 예정인 여성만을 위한 <보라X뮤직페스티벌>이다. 지난 8월 28일, 페스티벌 개최 한 달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보라X뮤직페스티벌> 기획단원 세정, 채은, 희진, 숲이아를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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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공공재'처럼 여기는 클럽, 불편했다"

 

- '여성만을 위한 뮤직 페스티벌'이라니. 페미니즘 행사 중에서는 큰 규모다. 기획단원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세정 : "올 초에 '2030 페미캠프'라는 곳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기획하게 됐다. 페미캠프 때 강당에서 소규모 클럽파티를 하면서 논 적이 있었는데, 특별한 장비도 없고 장소도 애매했지만 여성들끼리 신나게 춤을 추며 노니까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 여름에 락페스티벌에서 만나요' 이런 얘기를 하다가 어느덧 직접 주최를 계획하고 있더라(웃음)."

 

채은 : "나 역시 페미캠프 참가자다. 원래는 울산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페미캠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류애'를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들과 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8월 18일에 서울로 이주했다."

 

- 축제 이름이 특이하다. <보라X뮤직페스티벌>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뭔가?

희진 : "오랜 시간 논의 끝에 정해진 이름은 '퍼플로즈'였다. '계집페스티벌', '난년들의 파티', '쿵쾅쿵쾅' 등등 강한 이름들도 후보에 있었는데, 조금 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교적 평범한 이름을 택했다. 제목을 정한 뒤 홍보팀 회의에서 스태프 티셔츠 색깔을 정하고 있었는데, 보라색 테마를 또 쓰기엔 진부할 것 같다는 생각에 '보라 엑스!'라고 외쳤다. 페미니즘 상징인 '보라'와 콜라보(X)한다는 의미를 후에 붙였다(웃음). 이전 이름은 너무 얌전한 느낌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잘 바꾼 것 같다."

 

세정 : "이 페스티벌은 스웨덴의 '맨프리 페스티벌'에서 착안했다. 남성들은 입장할 수 없고 여성들만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다만 회의 과정에서 '여성만'이라는 개념이 아주 복잡하게 다가왔다. 자칫 잘못하면 또 다른 배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페스티벌 이름에는 '여성만', 'MAN-FREE'(맨프리)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자칫 페미니즘을 어렵게 여기고 '나도 참여해도 되나?'라고 주저하는 여성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좋은 취지의 행사인 만큼, 문턱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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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여성만을 위한' '뮤직페스티벌' 이어야 하나?

숲이아 : "디제이 레슨을 듣고 있을 만큼 음악을 좋아하고 춤을 좋아한다. 그래서 클럽에 자주 다니는데, 클럽에서는 못 볼 꼴을 많이 본다. '여자를 꼬시러' 클럽에 가는 남성들은 클럽이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의 몸을 공공재처럼 여긴다. 여성의 몸을 만져도 된다는 무언의 약속을 남성들끼리만 공유한다. 음악과 춤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여성들에게는 강간 문화에 기반한 클럽 문화가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여성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 파티를 기획하고 싶었다."

 

세정 : "나는 사실 페스티벌을 한 번도 안 가봤다. 페스티벌 안 가본 사람이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다(웃음). 내가 페스티벌이나 클럽을 잘 안 갔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뮤지션들만 주구장창 나오는 페스티벌에 관심도 없었고, '일탈의 공간'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은 더욱 위험에 노출되는 그런 분위기들도 싫었다. 성평등한 페스티벌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뒤에 처음 가보게 되는 거다."

 

채은 : "참여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한정지으면 다양성이 배제되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다양하고, 우리는 그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 다양성을 존중하기에 강하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라X뮤직페스티벌>은 멋진 기획이라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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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가사' 난무... 음악계에서도 여성은 '2등 시민'

 

- 음악을 소비하는 관점에서도 여성은 2등 시민이지만, 음악을 창작하는 분야에서도 여성 뮤지션은 뒷전인 것 같다.

채은 : "여성 혐오적 가사들은 대중음악-인디음악을 막론하고 퍼져있다. 인기 래퍼인 지코의 노래 나 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사가 정말 충격적이더라. 여성의 신체 일부를 아기처럼 묘사한다거나, 아름다운 여자는 대접 받아야 한다거나, 술에 취한 여성을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거나.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런 노래들에 매번 실망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인기 차트 100' 이런 걸 잘 안 듣게 되더라. 또 실력 있는 여성 래퍼들은 그냥 '잘한다'라고 평가받지 않고 '여자 중에 잘한다'고 평가받는 것도 안타까웠다. 여성 뮤지션들이 설 무대를 여성인 우리가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다."

 

희진 : "대중가요 가사는 사람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끼친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내뱉게 된다. '노랜데~ 예술인데~ 뭐가 어때?'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그 심각성을 알았으면 좋겠다."


세정 : "인디 음악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근 개봉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같이 남성 인디뮤지션들의 '힙함'을 다룬 영화들도 많지만, 여성 뮤지션들은 영화 출연은커녕 이름을 알리기도 힘들다. 여성인 '나'라는 사람은 저 판에 도저히 낄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

 

숲이아 : "올 3월, 서울커뮤니티라디오가 주최한 '젠더이퀄리티 인 더 뮤직 인더스트리 좌담회'에서는 남성 사회자가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음악 산업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논하는 자리에서까지 차별적 언사들이 이어졌다는 건 정말 충격적이다. 이후 해당 사회자가 공개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음악 산업에서의 불평등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 개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진행 상황은?

희진 : "1-2차 라인업이 공개됐다.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최삼, 디제이 SEESEA가 함께할 예정이다. 다양한 장르의 여성 뮤지션들을 많이 초대하려 노력했다. 포크음악을 하시는 싱어송라이터 '시와', 하드코어 펑크 밴드 '데드가카스', 서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A-FUZZ'가 멋진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얼리버드티켓 역시 성황리에 판매 중이다."

 

세정 : "처음 도전하는 행사이다 보니 막연한 자신감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뮤직페스티벌인 만큼, 다른 행사들과는 다르게 무대 장비 등이 예산이 많이 든다. 기획팀원들은 매번 '이 사람 저 사람 다 부르자', '멋진 거는 다 설치하자'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예산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지난 8월 27일, 페스티벌 굿즈를 판매하는 텀블벅을 열었다. 뱃지, 스티커, 파우치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디자인한 굿즈들이다. 텀블벅(관련 링크) 뿐만 아니라, 단체 후원, 개인 소액 후원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기다린다."


희진 : "페스티벌의 개최 취지를 알리기 위해 해시태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나의_불편한_페스티벌_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경험담을 모으고 있다.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즐기기 위한 공간-예를 들어 엠티, 학교 축제, 술자리, 클럽, 어디든-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표출하고, 그래서 여성들만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해시태그 이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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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공동주최 단위들이 눈에 띈다.

세정 : "그렇다. 열 곳 이상의 단위들이 함께 한다. 나쁜 페미니스트, 불꽃페미액션, 초등성평등연구회 등이 그 주인공이다. 공동주최 단위는 점점 늘어가는 중이다."

 

채은 : "이번 페스티벌이 더욱 유의미한 이유는, 지방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들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지방에서 살았다 보니 서울에서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번 페스티벌에는, 전주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 동경페설, 울산 페미 모임 '울프' 등 지방 활동가들이 함께해 그 의미를 더했다."

 

희진 : "나 역시 전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니, 페미니즘 활동에 있어서의 격차를 많이 느낀다. 서울에서 열리는 정말 많은 강연, 프로젝트 접근성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번 페스티벌을 기회로, 이렇게 좋은 활동이 지방에도 열릴 수 있으면 좋겠다."


- '아는 페미' 기획의 공식 질문이다. 여러분의 페미니즘 모먼트는 언제였나?

숲이아 : "삭발했을 때. 삭발을 하게 된 건 여성주의적 실천이었기 보다는, 내가 하던 생태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삭발을 하고 경험하는 세계가 달라졌다. 여성에 대한 젠더 스테레오 타입 등 여성성에 부가하는 수많은 억압을 느끼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삭발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 억압을 몸소 경험하면서 페미니즘을 만나게 되었다."

 

세정 :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으나,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주변에 말하는 게 겁이 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회식 자리에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한 학번 남자 선배가 '남자들은 나라에 2년을 바치고 오니까 여성들은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참을 수가 없더라. 그 3차 뒤풀이에서 술에 거하게 취해 남선배에게 화를 냈던 그 순간이 내겐 페미니즘 모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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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어떤 새로운 페미니즘 모먼트가 찾아올 것 같나?

세정 : "내년이 나의 페미니즘 모먼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도 많은 실망을 했는데, 이제는 여성주의 공약을 가진 페미니스트 후보가 나올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선의 희망을 한 번쯤을 가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채은 : "다음 모먼트는 '분노'에서 촉발되는 모먼트가 아니었으면 한다. 최근에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 여성 비제이가 살해협박을 받은 것, 여성 왁서 살인 사건 등 모든 것이 분노에서 촉발된 모먼트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올 모먼트가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 모먼트가 순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모든 순간이 페미니즘 모먼트가 되었으면 한다."

 

숲이아 : "<보라X뮤직페스티벌>이 개최되는 10월 8일이 모먼트가 되기를 바란다. 국내 최초 여성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 기획단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여성을 넘어 대한민국 자체에 큰 모먼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무엇을 '아는 페미'인가?

희진 : "'도전할 줄 아는 페미'. 여성주의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페미니즘을 만난 것도,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내성적이었던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채은 : "'시기를 아는 페미'.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우리는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가 모두의 페미니즘 모먼트다."

 

숲이아 : "'놀 줄 아는 페미'. 여성들이 다 같이 놀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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